강화도 메기매운탕 맛집 추어담, 찬우물 너머 붉은 솥단지의 시간

찬우물 너머, 붉은 솥단지의 시간

 

무림의 수많은 문파가 제 이름을 기치처럼 내걸고 저마다의 세를 과시할 때, 진짜 고수는 바람 한 점 들지 않는 외딴 그늘에서 조용히 숨을 고른다. 화려한 검법보다 묵직한 공력이 오래 남듯 음식도 그러하다. 세상의 요란한 찬사에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제 솥의 깊이를 지켜온 손끝에서 오래 기억되는 맛이 태어난다.

강호의 구석에는 그렇게 눈에 잘 띄지 않는 고수들이 있다.

강화도 시리미로에서 만난 ‘추어담’도 내게는 그런 집이었다.

연일 폭염이 대지를 지그시 짓누르는 계절이다. 유난히 뜨거운 여름날이면 잊힌 줄 알았던 유년의 아지랑이가 눈앞에 피어오른다.

어린 시절 여름 천렵은 한철을 견뎌내는 당당한 서사였다.

동네 아이들과 족대 하나를 들고 냇가로 달려갔다. 바지를 걷어붙이고 물속을 헤집다가 돌 밑으로 숨어드는 작은 물고기라도 발견하면 온 동네가 떠나갈 듯 소리를 질렀다.

물고기가 제법 모이면 자갈밭 한쪽에 돌을 쌓았다. 그 위에 솥을 걸고 마른 나뭇가지에 불을 붙였다. 붉은 고추장과 짭조름한 된장을 풀고 갓 잡은 민물고기를 넣었다. 밀가루 반죽을 손으로 툭툭 떼어 넣으면 그것으로 잔치는 충분했다.

매캐한 연기가 눈을 찌르고 이마에서는 땀이 비 오듯 흘렀다. 그래도 아이들은 뜨거운 솥을 떠날 줄 몰랐다.

서로 숟가락을 부딪치며 건져 먹던 수제비 한 점, 얼큰한 국물 한 숟가락이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먹었던 것은 매운탕만이 아니었다.

냇물과 햇볕을 먹었고, 함께 뛰놀던 친구들의 웃음을 먹었다. 아무 걱정 없던 한 시절을 한 솥에 끓여 나누어 먹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여름이면 혀보다 기억이 먼저 매운탕을 찾는다.

세월은 많은 것을 바꾸었다.

맑던 냇물의 모습도 달라졌고 냇가를 누비던 동무들도 저마다 삶의 궤적을 따라 흩어졌다. 이제 솥단지를 들고 냇가로 나가 불을 지필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러나 기억 속 국물은 좀처럼 식지 않는다.

여름날의 길목에 서면 그 얼큰하고 진했던 맛이 문득 그리워진다. 그럴 때면 가족과 함께 민물매운탕을 잘한다는 집을 찾아 길을 나선다.

어쩌면 한 끼를 먹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여름 한 조각을 찾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얼마 전에도 그런 마음으로 강화도로 차를 몰았다.

강화 읍내에서 온수리 방향으로 넘어가는 길목에는 ‘찬우물’이라 불리는 고개가 있다. 그 고갯길에 미치기 전 오른쪽 시골길로 방향을 틀어 5분 남짓 들어갔다.

시리미로를 따라 이어지는 풍경은 조용했다.

푸른 들판이 펼쳐지고 그 너머로 나지막한 산이 앉아 있었다. 도시의 소음은 어느새 멀어졌다. 그렇게 한적한 길 끝에서 ‘추어담’이라는 자그마한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강화도 맛집이라는 말에서 흔히 떠올리는 번화한 관광지의 식당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외관은 수수했다. 주변 풍경 속에 몸을 낮추고 조용히 앉아 있는 집처럼 보였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서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무더운 바깥 풍경과 달리 실내에는 이미 뜨거운 매운탕 냄비를 가운데 두고 이마의 땀을 닦는 식객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누군가는 메기 살을 발라 먹고 있었고, 누군가는 붉은 국물 속에서 수제비를 건져 올렸다.

화려한 광고가 없어도 맛을 아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집에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시끄럽게 자신을 자랑하지 않아도 자리가 차는 집이다.

강호로 치자면 이름난 문파의 현판 대신 입소문 하나로 객을 불러들이는 고수의 거처와 닮았다.

메기매운탕을 주문했다.

방문 당시 차림표에 적힌 4인분 가격은 5만 5천 원이었다. 네 사람이 나누어 먹는다고 하면 1인당 약 1만 3,750원이다. 물가가 크게 오른 요즘을 생각하면 부담이 크지 않은 가격이었다.

다만 음식 가격과 메뉴 구성은 시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실제 방문 전에는 최신 정보를 확인하는 편이 좋다.

얼마 지나지 않아 큼직한 냄비가 상 위에 올라왔다.

첫인상은 푸짐함이었다.

붉은 국물 아래로 민물새우가 넉넉하게 들어 있었고 통통한 메기가 큼직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여기에 쫀득하게 치댄 수제비와 라면 사리를 곁들여 먹을 수 있었다.

냄비가 끓기 시작했다.

보글보글.

붉은 국물이 솟았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뜨거운 김이 얼굴로 밀려왔다.

그 순간 오래전 냇가의 자갈밭이 떠올랐다.

돌을 쌓아 만든 화덕과 검게 그을린 솥단지, 매캐한 장작 연기 사이에서 국물이 끓기만을 기다리던 어린 얼굴들이 붉은 냄비 위로 겹쳐졌다.

진정한 압권은 첫 국물을 입에 넣었을 때 찾아왔다.

국물은 묵직하면서도 구수했다.

민물매운탕을 먹을 때 가장 먼저 신경 쓰이는 것은 민물고기 특유의 향이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이날 먹은 추어담 메기매운탕에서는 거슬리는 흙냄새나 비린 향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국물에서는 민물새우가 만들어내는 은근한 단맛과 시원한 감칠맛이 느껴졌다. 진한 양념이 중심을 잡으면서도 맛이 지나치게 무겁게 가라앉지는 않았다.

메기 살은 담백했다.

잘 익은 살점을 젓가락으로 건드리면 결을 따라 부드럽게 갈라졌다. 진한 국물과 함께 먹어도 생선 자체의 담백한 맛이 남았다.

그리고 수제비가 있었다.

붉은 국물을 흠뻑 머금은 수제비 한 점을 건져 입에 넣는 순간, 오래 잠들어 있던 기억 하나가 불쑥 깨어났다.

어린 시절 자갈밭 화덕 앞에서 친구들과 숟가락을 부딪치던 바로 그 여름이었다.

음식에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힘이 있다.

오래전 맡았던 냄새 하나가 잊고 있던 골목을 되살리고, 국물 한 숟가락이 수십 년 전의 얼굴을 불러오기도 한다.

내게 메기매운탕은 그런 음식이다.

민물매운탕은 강과 하천을 끼고 살아온 사람들의 생활과 가까운 음식이었다. 메기 같은 민물고기에 고추장이나 고춧가루 등으로 맛을 낸 얼큰한 국물을 더하고 채소와 수제비 등을 함께 끓이는 방식은 지역과 집집마다 조금씩 다르다.

특히 뜨거운 음식을 먹으며 더위를 견디는 방식은 한국의 이열치열이라는 여름 음식 문화와도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

한여름에 삼계탕을 찾듯 땀을 흘리며 뜨거운 매운탕을 먹는 풍경도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매운탕의 매력은 따로 있다.

매운탕은 혼자 먹기보다 함께 먹을 때 제맛이 나는 음식이다.

한 냄비를 가운데 두고 여러 사람이 숟가락을 움직인다. 국물이 졸아들면 사리를 넣고, 수제비를 건져주고, 잘 익은 생선 살을 서로의 그릇에 놓아준다.

그 사이 이야기가 오간다.

그래서 매운탕 한 냄비에는 음식뿐 아니라 사람의 시간이 함께 끓는다.

강화도 역시 바다와 갯벌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아쉬운 곳이다.

섬 안쪽으로 들어서면 넓은 논과 밭이 이어지고 낮은 산과 오래된 마을길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름난 관광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강화도 특유의 느리고 한적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찬우물 고개와 시리미로를 지나 추어담으로 향하는 길도 그랬다.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여행의 속도가 조금씩 느려졌다.

그 느린 길 끝에서 만난 강화도 메기매운탕은 주변 풍경과 묘하게 잘 어울렸다.

진짜 고수는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화려한 도포 자락을 휘날리지 않는 법이다.

남들의 눈이 쉽게 닿지 않는 들녘 길목에 조용히 솥을 걸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뜨거운 국 한 대접을 내놓는다.

내게 강화도 추어담은 그런 인상을 남긴 식당이었다.

민물새우가 들어간 진한 국물, 담백한 메기 살, 국물을 머금은 수제비가 한 냄비 안에서 어우러졌다.

무엇보다 그 맛에는 오래전 냇가의 시간이 있었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어쩌면 음식 그 자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 음식을 함께 먹었던 사람일 수 있다.

발을 담갔던 차가운 냇물일 수도 있고, 젖은 자갈의 감촉이나 장작불의 매캐한 연기일 수도 있다.

아무 걱정 없이 웃었던 한때인지도 모른다.

세월은 그 모든 것을 먼 곳으로 데려간다.

하지만 맛은 가끔 시간을 거꾸로 흐르게 한다.

국물 한 숟가락에 잊었던 얼굴이 돌아오고, 수제비 한 점에 오래전 여름날이 다시 열린다.

그래서 여름의 무더위가 마음까지 눅눅하게 적시는 날이면 강화도 찬우물 너머의 길이 생각날 것 같다.

시리미로의 조용한 풍경을 지나 작은 식당에 들어가 붉은 메기매운탕 한 냄비를 앞에 두는 일.

그것만으로도 오래된 여름 하나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좋은 음식은 배만 채우지 않는다.

때로는 지나간 계절을 불러오고, 잊고 있던 사람을 데려오며, 오래전의 나를 지금의 나와 같은 밥상에 앉혀놓는다.

찬우물 너머에서 만난 붉은 솥단지도 그랬다.

뜨거운 국물 한 숟가락을 삼키자 아주 오래전 냇가에서 끓고 있던 여름이 다시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온기 덕분에, 다시 한 계절을 건너갈 힘을 조금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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