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무게

새벽 미사가 끝날 무렵이면 성당 마당에는 서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마당 한구석, 키 작은 사철나무 옆에는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작은 나무 궤가 놓여 있었다. 미사를 마친 사람들은 그 앞을 지나며 동전 몇 닢씩을 넣곤 했다.
초등학생이던 나는 그 나무 궤 옆에 늘 같은 할머니가 서 있던 것을 기억한다.
구부정한 허리에 무명치마를 입은 노파였다. 동네 사람들은 그를 ‘마리아 할매’라고 불렀다.
할매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누군가 나무 궤에 동전을 넣으면 짤랑거리는 소리 사이로 작은 기도 소리가 들렸다.
할매에게는 오래전 사고로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된 아들이 있었다. 의사는 다시 걷기 어렵다고 했다.
할매는 낮이면 폐지를 주웠다. 폐지를 팔아 받은 몇 천 원과 사람들이 가끔 손에 쥐여준 돈을 모아 성당 헌금함에 넣었다.
그리고 신부님을 찾아갔다.
“신부님, 내가 매일 이래 기도하고 바치면, 우리 애가 성모님 은혜로 다시 걸을 수 있겠지요?”
나는 그때 신부님의 얼굴을 기억한다.
젊은 신부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그는 할매에게 아들이 반드시 다시 걸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할매가 붙들고 있던 희망을 꺾지도 않았다.
신부님은 할매의 거친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할머니의 기도가 헛되지는 않을 겁니다. 어떤 모습으로든 그 기도는 반드시 누군가에게 닿을 겁니다.”
할매는 그 말을 아들이 다시 걸을 수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날 이후 할매의 기도는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할매는 폐지를 팔아 번 돈 가운데 일부를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내어주기 시작했다. 혼자 사는 노인에게 밥을 건넸고, 아픈 사람을 찾아가 손을 잡아주었다.
때로는 자신에게도 귀했을 몇 천 원을 남의 손에 쥐여주었다.
할매는 그것을 아들을 위한 ‘선행의 적금’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일을 하나씩 쌓아가면 언젠가 그 정성이 아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믿었던 모양이다.
생각해보면 그 선행에는 할매 자신의 바람도 섞여 있었다. 오직 남을 위해서만 한 일은 아니었다.
아들이 다시 걷기를 바랐고, 자신이 베푼 선행이 어떤 방식으로든 아들에게 돌아오기를 바랐다.
그렇다면 그런 선행은 덜 선한 것일까.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동기가 완전하지 않았다고 해서 밥 한 그릇의 온기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도를 믿었던 할매가 건넨 밥은 실제로 따뜻했다.
하지만 할매의 기도는 끝내 아들을 일으키지 못했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에서는 그렇다.
할매는 아들이 다시 걷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것을 기도의 실패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토록 오래 기도했는데도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신부님의 말은 틀린 것이 아닌가.
오랫동안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오래전 그 성당 마당을 다른 눈으로 돌아보게 되었다.
할매의 기도가 아무도 일으키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할매가 건넨 밥 한 그릇으로 허기를 견딘 사람이 있었다. 할매가 내민 몇 천 원으로 하루를 버틴 사람이 있었다.
말없이 찾아와 손을 잡아주는 할매 때문에 외로운 하루를 견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아들을 일으켜 달라며 시작한 기도가 이상하게도 다른 사람들을 하나씩 일으키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오래전 신부님이 했던 말을 다시 떠올렸다.
“어떤 모습으로든 그 기도는 반드시 누군가에게 닿을 겁니다.”
신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기도가 정말 하늘에 닿는지도 알지 못한다.
나는 그것을 증명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다.
다만 내가 본 것은 있다.
폐지 한 묶음이 몇 천 원이 되었고, 그 몇 천 원이 누군가의 하루가 되었다.
기도하던 손이 밥을 건네는 손이 되었다.
아들을 위해 모으던 마음이 어느 순간 다른 사람의 삶으로 흘러갔다.
그래서 이제 나는 신부님의 말이 거짓이었다고 쉽게 말하지 못한다.
할매가 바라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들은 일어서지 못했다.
그런데 할매의 기도는 밥 한 그릇이 되었고, 몇 천 원이 되었고, 외로운 사람의 손을 잡는 일이 되었다.
기도는 그렇게 사람에게로 흘러갔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나는 가끔 새벽 성당 마당을 떠올린다.
사철나무 옆의 작은 나무 궤와 그 안으로 떨어지던 동전 소리, 그리고 그 곁에서 두 손을 모으고 있던 마리아 할매를 떠올린다.
할매는 평생 한 사람을 일으켜 달라고 기도했다.
그 기도는 끝내 그 사람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기도가 아무에게도 닿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할매의 기도는 하늘에 닿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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