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트코에서 길을 잃다|미국 얼바인에서 돌아와 깨달은 대량 소비와 냉장고의 심리

코스트코에서 길을 잃다

기억은 가끔 공간의 크기로 환산된다.

은퇴 후 3개월 동안 머물렀던 미국 캘리포니아 얼바인은 내게 ‘너무 넓어서 서글픈 도시’였다. 끝없이 이어지는 직선도로와 야자수가 늘어선 도로, 눈이 시릴 만큼 푸른 하늘은 분명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넓은 풍경은 이상하게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까지 함께 넓혀 놓은 듯했다. 아파트를 나서도 사람을 만나기보다 자동차를 먼저 만났고, 동네를 한 바퀴 걷는 대신 시동을 거는 일이 일상이었다.

한국에서는 슬리퍼를 신고 집 앞 마트에 가 두부 한 모와 대파 한 단을 사 오는 일이 자연스럽다. 필요한 것이 생기면 언제든 다시 나가면 된다. 하지만 얼바인에서는 달랐다. 식재료가 떨어질 때마다 자동차를 몰고 한참을 달려야 했다. 목적지는 늘 한인 마트 H마트 아니면 창고형 할인매장 코스트코였다.

처음 코스트코에 들어섰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선명하다.

천장까지 닿은 철제 선반에는 생수와 휴지, 세제가 산처럼 쌓여 있었고, 사람들은 아이 한 명쯤은 태울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카트를 아무렇지 않게 밀고 다녔다. 백인 노부부는 생수와 사료를 가득 담았고, 멕시코계로 보이는 대가족은 고기와 과일, 음료를 카트 두 대에 나눠 실었다. 젊은 부부는 기저귀와 장난감을 한꺼번에 담고 계산대로 향했다.

그들의 카트는 모두 넘칠 듯 가득했지만 누구도 많이 산다고 망설이지 않았다. 넓은 집과 자동차 중심의 생활에서는 한 번에 많이 사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덩달아 머핀 한 상자와 베이글, 대용량 치즈를 샀다. 계산을 마치고 나올 때는 왠지 부자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풍요는 오래가지 않았다.

머핀은 끝내 다 먹지 못했다. 냉장고 구석에 밀려 있던 머핀은 며칠 뒤 하얀 곰팡이를 뒤집어쓴 채 발견됐다. 아까워하며 버리던 순간, 절약하려고 산 물건이 결국 낭비가 되었다는 사실을 처음 실감했다.

그때는 미국 생활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줄 알았다.

시간이 흘러 한국으로 돌아왔다.

놀랍게도 지금은 집에서 5분만 걸으면 마트가 있다. 새벽배송은 물론 당일배송도 익숙한 시대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몇 시간 안에 집 앞으로 배달된다. 그럼에도 우리 집에는 일반 냉장고와 김치냉장고, 냉동고까지 세 대가 쉼 없이 돌아간다. 언제 샀는지 기억나지 않는 냉동만두와 이름표가 희미해진 고기 봉지, 유통기한을 확인해야 하는 식재료들이 칸마다 들어차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제든 살 수 있는 나라에서 우리는 왜 이렇게 많이 저장하며 살고 있을까.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다시 코스트코를 찾는다.

회원카드를 보여주고 입장하는 순간부터 이상한 기대감이 생긴다. 커다란 카트를 하나 밀기 시작하면 필요한 물건보다 다른 사람들의 카트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누군가는 와인을 담고, 누군가는 수입 소고기를 담는다. 아이를 데려온 젊은 부부는 장난감과 간식을 한가득 싣고, 어느 중년 부부는 휴지와 세제만으로도 카트를 가득 채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나도 비교하기 시작한다.

‘저건 정말 필요한 걸까.’

‘다들 사는데 나만 안 사면 손해 보는 건 아닐까.’

결국 살 생각도 없던 대용량 세제와 치즈를 카트에 담고 나서야 마음이 조금 편안해진다.

그제야 깨달았다.

코스트코는 단순한 창고형 할인매장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소비를 보며 자신의 소비를 결정하게 만드는 거대한 공간이다.

물건을 사러 왔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타인의 욕망을 구경하고 있었던 셈이다.

예전에는 전통시장의 정을 자주 이야기했다. 상인이 건네는 “하나 더 가져가세요.”라는 말과 흥정 끝에 따라오는 덤이 사람 냄새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지금의 나는 시장보다 코스트코를 더 자주 찾는다. 편리함과 가격 앞에서 추억은 쉽게 밀려난다.

결국 변한 것은 시장이 아니라 나였다.

장을 보고 돌아와 냉동고 문을 열었다.

이미 빈틈없이 들어찬 냉동식품 사이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겨우 작은 공간 하나를 만들어 새 물건을 밀어 넣었다. 문을 닫으려는데 문득 얼바인에서 버렸던 곰팡이 핀 머핀이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내가 그곳에서 채우고 싶었던 것은 냉장고가 아니었다.

낯선 도시에서 건네받는 인사 한마디, 우연히 눈을 마주치는 사람 하나,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도 나는 어쩌면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때 채우지 못했던 빈자리를 조금씩 메우려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코스트코에 가면 거대한 매장보다 사람들의 카트가 먼저 보인다.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많이 가져야 안심하는 사람이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돌이켜보면 내가 길을 잃은 곳은 미국의 코스트코 안이 아니었다.

많이 가질수록 더 안전하다고 믿게 된, 내 마음속 소비의 습관 속에서 나는 아직도 길을 찾는 중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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