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썰물 |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서 배운 버티는 삶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 서서

 

어떤 계절의 인생은
만조의 바다를 닮아 있다.

손끝마다 물결이 닿고,

바람은
세상이 오래도록 내 편일 것처럼 분다.

그러나 바다는
아무 약속도 하지 않는다.

가득 차오른 물은

반드시

한 번은 물러간다.

스무 해 전 겨울,

내 삶에도

썰물이 찾아왔다.

조금씩 어긋나던 일들은

끝내 제자리를 잃었고,

믿음은 금이 간 유리처럼

조용히 무너졌다.

가난은

문 앞에 오래 머물렀고,

몸은

예전의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멀어진 것이 아니라

조용히

보이지 않게 되었다.

파도 속에서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

눈을 뜨면 물이 들어오고,

입을 열면 바닷물이 차오른다.

그때 사람은

희망이 아니라

숨을 붙든다.

물이 모두 빠져나간 날,

나는

처음으로 바닥을 보았다.

젖은 모래,

깨진 조개껍데기,

이끼를 품은 바위,

파도에 깎여도

끝내 사라지지 않은 것들.

그리고

그 사이에

나도 있었다.

처음에는

그 황량함이 두려웠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오래 바라볼수록

바닥은

비어 있는 곳이 아니었다.

가장 깊은 곳에서만

드러나는 풍경이었다.

그 겨울,

나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다만

하루를 버텼다.

한 끼를 삼키고,

한숨을 넘기고,

다시 아침을 맞았다.

세상은 그것을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했지만,

시간은 알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람은

뿌리처럼 자란다는 것을.

돌은

파도를 이기지 않는다.

그저

그 자리에 남는다.

수없이 씻기고,

수없이 깎이면서도

끝내

바다가 기억하는 모양이 된다.

그 겨울의 나는

그 돌 하나였다.

이제는 안다.

나를 만든 것은

빛나던 계절이 아니라,

아무도 박수치지 않던 날들이었다.

기대가 사라진 자리,

희망조차 조용했던 시간,

그곳에서

나는

나를 잃지 않는 법을 배웠다.

오늘도

누군가는

세상의 모든 파도를 홀로 견디고 있을 것이다.

그 사람에게

멀리서

한 문장을 띄워 보낸다.

썰물은 삶을 비우는 시간이 아니라,
끝내 남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 주는 시간이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바다가 돌아오더라도,

우리는 안다.

변한 것은

밀물이 아니라,

파도를 지나온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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