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이 가장 깊었던 시절이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일조차 버거웠고,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산을 오르는 일처럼 힘들었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말했지만, 그 말은 내게 닿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희망보다 체념에 더 가까운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괴로웠던 것은 스스로를 폐기된 사람이라고 믿었다는 것이다.
더 이상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다.
망가졌고, 고장 났고,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단정했다. 세상은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만 멈춰 있는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짐이 되는 존재, 버려진 물건처럼 구석에 놓인 존재가 바로 나라고 여겼다.
어느 날 분리수거를 하러 내려갔다.
투명한 페트병은 투명한 것끼리, 캔은 캔끼리, 종이는 종이끼리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한 손에는 찌그러진 알루미늄 캔을 들고 있었다. 누군가의 갈증을 채우고 난 뒤 아무렇게나 구겨진 작은 캔이었다.
잠시 손을 멈췄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캔은 정말 끝난 것일까.
찌그러졌지만 금속은 사라지지 않았다.
라벨이 벗겨졌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형태만 달라졌을 뿐, 다시 녹아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날 수 있는 재료였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내 이야기를 보는 것 같았다.
나는 내 상처만 바라보느라, 아직 남아 있는 가능성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우울증은 내 삶을 무너뜨렸지만, 나라는 사람 자체를 없애지는 못했다.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상담을 받고, 약을 먹고, 겨우 산책을 시작했다. 어떤 날은 한 걸음도 내딛지 못했고, 어떤 날은 이유 없이 눈물이 흘렀다. 회복은 드라마처럼 극적이지 않았다. 아주 느렸고, 자주 뒤로 물러났으며,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살아냈다.
돌아보니 그 시간은 나를 버리는 과정이 아니라 다시 만드는 과정이었다.
재활용 공정에서 금속은 뜨거운 열을 견뎌야 한다. 이전의 모양은 사라지지만, 그 덕분에 새로운 형태를 얻는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내가 지나온 시간도 다르게 보였다.
나는 폐기된 것이 아니었다.
다시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예전의 나는 상처가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회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회복은 상처가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 상처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이라는 것을.
우울증을 겪었다는 사실은 내 삶에서 지울 수 없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 시간 덕분에 누군가의 침묵을 이해하게 되었고, 아무렇지 않은 척 웃고 있는 사람의 눈빛을 한 번 더 바라보게 되었다. 아픔은 나를 약하게만 만들지 않았다. 이전보다 더 단단하고, 더 깊은 사람이 되게 했다.
그래서 나는 재활용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재활용은 버려진 물건의 이야기가 아니다.
다시 가능성을 믿는 이야기다.
한 번 쓰였다고 가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듯, 한 번 무너졌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지금도 혹시 스스로를 폐기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당신은 버려진 것이 아니다.
잠시 다시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다.
나 역시 한때는 폐기된 줄 알았다.
하지만 긴 시간을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쓰레기가 아니라 재활용품이었다.
아니, 예전보다 더 오래 빛나는 삶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부활은 기적처럼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었다.
끝이라고 믿었던 자리에서 다시 자신을 믿기 시작하는 순간, 그곳에서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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