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 물컵 속에
먼저 떠 있는 것이 있었다.
햇살도 아니고
먼지도 아니고
어젯밤 동동주에 남아 있던
쌀알 같은 기분.
나는 알았다.
오늘은 아내가 뜨는 날이라는 걸.
그 사람은 이유 없이 잘 뜬다.
베란다로 스며든 바람 한 줄기에도,
“선생님, 감사합니다”
짧은 문자 한 통에도,
젖은 빨래가 마르는 냄새에도
마음이 먼저 수면 위로 올라온다.
나는 그 모습을 오래 본다.
동동 떠 있는 사람은
세상 위에 얇은 배 하나를 띄워 두고 사는 사람이다.
무게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가라앉는 법을 알기 때문에
조금은 떠 있을 줄 아는 사람.
신호등이 노랗게 변할 때
나는 브레이크를 밟는다.
떠 있는 사람 곁에서는
누군가 바닥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집이 물속으로 잠기지 않는다.
점심 무렵
운동장 위 만국기가 흔들리고
아이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린다.
한 아이가 넘어졌다가
조용히 일어나 다시 줄에 선다.
그 장면을 본 뒤
아내는 말없이 웃는다.
나는 안다.
저 웃음도 또 하나의 부력이라는 걸.
저녁 설거지 물 위에
형광등이 부서져 떠 있다.
거품 몇 개가 끝까지 가라앉지 않는다.
아내의 하루가 그렇다.
완전히 날아오르지도,
완전히 잠기지도 않는다.
나는 그 아래에서
보이지 않는 물살이 된다.
떠 있는 것을 떠 있게 하고
가라앉는 것을 천천히 밀어 올리는
아주 낮은 힘.
사랑은
서로를 끌어안고 가라앉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이 잠길 때
다른 사람이 조금 더 떠 있는 일.
내일도 아내가 동동 뜨면 좋겠다.
나는 조용히 물이 되어
그 사람 아래에서
흔들림을 받아낼 테니.
그리고 언젠가
우리 둘 다 힘이 빠져
물 위에 나란히 떠 있는 날이 오더라도,
그때는 알 것이다.
우리가 버텨 온 시간들이
이미 우리를
가볍게 만들어 두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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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을 움켜쥔다는 것: 불완전한 삶에서 시작되는 성장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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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뜨다’와 ‘가라 앉다’의 반의하는 대립어로 읽으니 시의 의미가 쉽게 읽히네요. 다만, 그 어휘 범주에 ‘떠내려 가다’가 있어서 ‘뜨다’의 의미를 절제하여 읽게 하네요. 우리말 격언에 ‘여우같은 여자랑은 살아도. 곰같은 여자랑은 못산다’란 말과 ‘미련 곰땡이 같은’ 이라는 즐겨 쓰는 비유어가 있는데, 이 시를 읽으며 떠오른 말들이었습니다. 이 땅의 언중들은 왜 그렇게 곰을 싫어 할까요? 건국 신화에 따르면 우리는 곰(웅녀)과 하느님의 아들(환웅)이 결혼하여 낳은 단군할아버지의 후예들인데 말이지요. 곰은 외형으로 덩치도 엄청나게 크고 대단한 힘도 있어서 지구상에 발을 가지고 움직이는 물건 중에 곰과 대적할 것들이 많지 않지 싶은데, 성질도 포악하고 단순하여 적이나 먹잇감을 만나면 한치 망설임, 물러남 없이 공격하여 상대를 쓰러트릴텐데요. 건국 신화 속 곰 그대로, 참을성 많고 미련할 만큼 우직하고 남 눈치 안보고 속내를 금방 드러내고…이런 사람을 상상해 보니 고집 불통에 눈치라고는 없고 단순하며 상대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는 사람이니 이런 사람과는 못산다는 격언이 나올 법 하겠더라고요. 반면, 여우는 어떨까요. 작은 외형에 힘도 적당하여 만나는 먹잇감이나 적들에 정면으로 맞서기에는 부족하며, 눈치를 살피고 찬스를 엿보다 먹이를 낚아채야하고 영리하며 민첩하고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전략이 있으니 이런 형의 사람이면 자신의 주장을 말하기 전에 분위기나 상대의 눈치를 먼저 살피니 다툼과 갈등이 적고 그러면서도 얻고자 하는 실리는 챙기며 분위기 파악을 잘하여 그 판의 분위를 조절하니 이런 유의 사람과는 살만하겠더라고요. 이솝 우화에 여우가 여러 번 등장하는 것도 그 만큼 꾀가 많고 영리한 동물이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살아보니 한 사람이 또 한 사람과 만나 결혼을 하고 쭉 오래 갈등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서로가 많은 지혜와 참고 화해함, 그리고 용서하고 포용하는 용기가 꼭 필요하다고 느꼈는데요. 집이 또는 그 가족이 물 속으로 가라 않지 않도록, 또는 물에 휩쓸려 떠 내려가지 않게 동동 띄우는 역할을 지혜롭고 현명한 아내가 잘 하고 계시군요. 내내 행복하시기를 빕니다
울림님, 이렇게 깊이 읽어 주시고 긴 마음을 남겨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댓글을 여러 번 천천히 읽었습니다. 저는 ‘뜨다’와 ‘가라앉다’라는 두 축으로만 생각하며 썼는데, 울림님께서 말씀하신 ‘떠내려가다’라는 또 다른 의미까지 더해지는 순간, 저 역시 제 시를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같은 단어도 읽는 사람에 따라 이렇게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이 문학의 즐거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 곰과 여우에 대한 이야기도 무척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우리가 너무 익숙하게 사용하는 속담과 비유들이 사실은 오랜 세월 사람들의 경험과 인식이 쌓여 만들어진 것인데, 그것을 건국신화의 웅녀까지 연결해서 풀어 주시는 시선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말씀을 읽다 보니, 곰은 힘으로 버티는 존재이고 여우는 지혜로 살아가는 존재라기보다, 결국 둘 다 세상을 견디는 방식이 다른 존재일 뿐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실 이 시에서 제가 말하고 싶었던 ‘동동 뜨다’도 마냥 들뜨거나 가벼운 상태를 의미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내는 사소한 기쁨에도 금세 마음이 떠오르지만, 그만큼 작은 슬픔에도 쉽게 가라앉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시 속의 ‘뜨다’는 가벼움이라기보다, 삶의 무게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끝내 완전히 가라앉지 않으려는 마음의 부력에 더 가까운 표현이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인 ‘나’는 일부러 물이 되었습니다. 물은 앞에 나서지 않지만 떠 있는 것을 받쳐 주고, 가라앉는 것을 조금 늦춰 주는 존재이니까요. 부부는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때그때 서로 다른 역할을 맡으며 한 가정을 함께 띄워 가는 사이라는 생각을 담고 싶었습니다.
울림님께서 마지막에 적어 주신 “집이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도록, 또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도록 동동 띄우는 역할”이라는 문장을 읽으며, 제가 미처 표현하지 못한 시의 한 부분을 대신 써 주신 것 같은 느낌도 받았습니다. 참 고마운 문장이었습니다.
귀한 시간을 내어 이렇게 긴 글을 남겨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댓글을 통해 저 역시 많이 생각하고 배웠습니다. 앞으로도 제 글 속에서 부족한 부분은 따뜻하게 짚어 주시고,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하시면 언제든 함께 나눠 주시면 좋겠습니다.
울림님의 일상에도 언제나 잔잔한 부력 같은 평안과 행복이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