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현재의 자신에게만 잔인해|지금을 가장 아프게 대하는 이유에 대하여

사람은 현재의 자신에게만 잔인해.
이 문장을 처음 떠올린 날, 나는 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이었다.
번호표는 천천히 줄어들었고, 의사는 아직 나를 부르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급해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그날따라 죄처럼 느껴졌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나는 지금의 나를 처벌하고 있었다.

과거의 나는 이해받는다.
그땐 최선을 다했지, 어쩔 수 없었지, 라는 말로 기억은 둥글게 다듬어진다.
미래의 나는 용서받는다.
아직 기회가 있고, 아직 늦지 않았다는 말로 미리 관대해진다.
그런데 현재의 나는 다르다.
아무 성과도 증명하지 못한 상태의 나는 늘 유죄다.

나는 나를 게으르다고 불렀고,
부족하다고 불렀고,
뒤처졌다고 불렀다.
그 말들이 사실인지 확인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의 나는 늘 판결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잔인함은 불안에서 온다.
멈춰 있으면 사라질 것 같다는 두려움,
속도를 늦추면 낙오될 것 같다는 공포.
그래서 나는 오늘의 나를 몰아붙였다.
“이 정도로는 안 돼.”
“지금 쉬면 끝이야.”
그 말들은 나를 성장시키지 않았다.
그저 나를 조용히 마모시켰다.

현재는 보호막이 없다.
과거처럼 이미 끝난 이야기로 정리할 수도 없고,
미래처럼 희망이라는 포장지를 씌울 수도 없다.
그래서 현재의 나는 늘 맨몸이다.
그 맨몸을 가장 먼저 때리는 사람이,
다름 아닌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 가장 잔인하다.

그날 대기실에서 나는 처음으로
현재의 나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
잘하고 있냐고 묻지 않았다.
왜 아직 여기냐고도 묻지 않았다.
그저 묻지 않기로 했다.
지금의 나를 심문하지 않는 선택을 해 보았다.

사람은 현재의 자신에게만 잔인해.
하지만 그 잔인함은 필수가 아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 온 습관일 뿐이다.

오늘의 나를 적으로 삼지 않는 순간,
삶은 갑자기 빨라지지 않는다.
대신 무너지지 않는다.
그리고 어쩌면,
그게 계속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속도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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