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길, 기적을 체험하다|수능 감독관의 갓길 주행 실화

수능 감독관의 긴박한 출근길을 표현한 이미지

수능 감독관의 아침은 출근이 아니라 출정이다.

시험이 시작되기 전부터 심장은 먼저 시험을 본다. 감독관 입실 시각은 오전 7시 30분. 평소라면 “조금 늦을 수도 있지”로 넘길 몇 분이 이날만큼은 국가적 재난처럼 느껴진다.

나는 어둠이 덜 걷힌 새벽에 집을 나섰다. 길은 한산했다. 직장인들의 출근 시각도 늦춰졌고, 경찰 오토바이는 다급한 수험생을 태우고 달렸다. 대한민국 전체가 한날한시에 아이들의 시험을 위해 숨을 고르는 듯했다.

시험장 3킬로미터 앞에서 멈추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만 해도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그런데 시험장을 3킬로미터 남겨둔 지점에서 차들이 갑자기 멈췄다.

시계를 보았다. 입실 마감까지 17분.

앞에는 자동차 수백 대가 꼬리를 물고 있었고, 뒤에는 내가 살아온 교직 생활 32년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수능 감독관의 지각은 평범한 지각이 아니다. 시험 운영에 차질을 줄 수 있고 동료에게 부담을 떠넘길 수도 있다.

평소에는 여유를 말하던 사람도 늦을 것 같으면 철학을 잊는다. 조급함 속에서 여유를 찾으려 했던 어느 아침과 달리, 그날의 나는 여유를 찾을 틈조차 없었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혔고 운전대는 점점 미끄러워졌다.

‘절대 늦으면 안 된다.’

그 생각밖에 없었다.

태어나 처음 간절해진 기도

나는 운전대 앞에서 두 손을 잠깐 모았다. 평소에는 필요할 때만 신을 찾는 얌체 신자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간절했다.

“신이시여, 길을 열어주소서. 단 5분만이라도 좋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고개를 들었다.

그때 기적처럼 빈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정체된 차들 옆으로 곧게 뻗은 길이었다. 차 한 대 없었다. 마치 나만을 위해 열어둔 통로처럼 보였다.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액셀을 밟았다.

수험생에게 공정한 시험장을 만들어야 할 감독관이 정작 도로 위에서는 공정성을 잠시 잊었다. AI 시대에도 수능의 공정성을 지킬 수 있을까 묻는 이야기보다 훨씬 원시적인 문제가 벌어졌다. 인간 감독관 한 명이 시간 앞에서 양심과 씨름하고 있었던 것이다.

차는 막힘없이 달렸다. 신이 “이리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길을 마음속으로 ‘신의 길’이라 불렀다.

시험장에 도착해 출석 확인을 마쳤을 때는 온몸에서 힘이 빠졌다. 늦지 않았다. 아이들의 시험도 차질 없이 시작되었다.

나는 속으로 감사했다.

‘오늘 정말 기적을 체험했구나.’

신의 길에는 통행료가 있었다

며칠 뒤, 우편함에 낯선 봉투가 도착했다.

경찰은 내가 달린 길을 ‘신의 길’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갓길 주행.

기적의 공식 명칭은 도로교통법 위반이었고, 감사헌금처럼 범칙금 6만 원이 붙어 있었다.

나는 고지서를 한참 바라보다 웃었다. 신은 길을 열어주셨지만 법까지 닫아주지는 않으셨다. 급한 사정이 잘못을 옳게 만들지는 않는다. 아이들의 시험을 지키겠다는 책임감도 갓길 주행의 면허증은 될 수 없었다.

그래도 그날의 기억은 오래 남았다. 다급한 순간에는 누구나 자기 행동을 기적으로 포장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기적과 요행 사이에는 얇은 갓길 하나가 놓여 있다.

32년 차 교사가 지나온 길고도 짧은 출퇴근길에는 수많은 신호등과 정체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교직도 마찬가지였다. 빨리 가는 것보다 제시간에, 안전하게, 맡은 자리까지 가는 일이 중요했다.

그날 나는 두 가지를 배웠다.

간절한 기도는 마음의 길을 열 수 있다. 하지만 자동차의 갓길까지 합법으로 바꾸지는 못한다.

세상에는 공짜 기적이 드물다.

가끔은 6만 원짜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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