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1학년 1반 친구들에게|퇴직 교사가 보내는 새해 편지

사랑하는 1학년 1반 친구들아.

이 편지는 2025년 1월 1일, 너희에게 하지 못한 작별 인사까지 담아 쓴 선생님의 새해 편지란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겨우 나흘이었다. 달력에서는 손가락 몇 개로 셀 수 있는 짧은 시간이지만, 마음의 달력은 이상하단다. 오래 함께한 날보다 짧게 스친 며칠을 더 선명하게 간직하기도 하니까.

나흘이 남긴 긴 기억

선생님은 담임 선생님이 아니었다. 그래서 너희의 이름을 모두 외우지도 못했고, 준비물 하나하나를 챙겨주지도 못했다. 제대로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한 것도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런데 너희는 퇴직한 할아버지 선생님을 낯설어하지 않았다. 작은 질문에도 손을 번쩍 들었고, 눈이 마주치면 먼저 웃었다. 교실은 아이들이 앉아 있는 방이 아니라, 서로를 믿기 시작할 때 비로소 교실이 된다는 것을 너희가 다시 가르쳐 주었다.

선생님은 훗날 한 학급의 믿음이 아이를 바꾸는 순간을 떠올릴 때에도 너희의 맑은 눈을 함께 기억할 것이다. 사람은 꾸중만으로 자라지 않는다. 자신을 믿어주는 눈빛을 먹고 자란단다.

잘하는 아이보다 따뜻한 아이

공부를 잘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친구가 넘어졌을 때 손을 내미는 일은 그보다 오래 남는다. 정답을 빨리 찾는 아이도 훌륭하지만, 울고 있는 친구의 마음을 먼저 알아보는 아이는 세상을 따뜻하게 만든다.

살다 보면 마음이 흔들리는 날도 올 것이다. 친구와 다투고, 시험을 망치고,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은 날도 있을 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것이 용기는 아니다. 흔들린 뒤에도 다시 친구의 손을 잡는 것이 용기다.

선생님도 오랫동안 교단에 있었지만 뒤늦게 깨달은 것이 많다. 학생의 말보다 먼저 눈을 보아야 했다는 교사의 뒤늦은 고백처럼, 어른도 늘 정답을 아는 사람은 아니다. 어른은 실수를 인정하며 조금 늦게 자라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너희도 잘못했다고 해서 스스로를 미워하지 말거라. 미안하다고 말하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 넘어짐은 실패가 아니라, 마음이 무릎을 갖게 되는 과정이란다.

선생님이 부탁하고 싶은 한 가지

친구를 괴롭혀 웃음을 얻지 말아라. 누군가의 눈물을 밟고 올라선 기쁨은 오래가지 못한다. 반대로 작은 친절 하나는 생각보다 멀리 간다. 빌려준 연필 한 자루, 함께 먹은 간식 한 조각, 혼자 있는 친구에게 건넨 한마디가 어떤 사람의 하루를 구하기도 한다.

선생님은 너희가 모두 같은 꽃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빨리 피는 꽃도 있고 늦게 피는 꽃도 있다. 키가 큰 꽃도 있고 땅 가까이 피어 바람을 견디는 꽃도 있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교실은 꽃밭이 된다.

이제 너희는 한 학년씩 자라 언젠가 이 편지 속 ‘1학년 1반’보다 훨씬 커질 것이다. 선생님도 더 나이 들 것이다. 그래도 마음속 교실에서는 너희가 여전히 조그만 의자에 앉아 손을 들고 있을 것 같다.

마지막 교실을 떠난 뒤에야 알게 된 교사의 마음은 이렇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쳤는지보다, 아이들이 선생님을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는지가 더 오래 남는다는 것.

너희는 나흘 동안 선생님에게 다시 선생님이 될 기회를 주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아니, 넘치도록 고마웠다.

사랑하는 1학년 1반 친구들아.

공부보다 먼저 사람을 배우고, 이기는 법보다 함께 가는 법을 배우기를 바란다. 세상이 너희에게 큰 사람이 되라고 재촉하더라도, 먼저 따뜻한 사람이 되어라.

선생님은 너희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지 못할지 모른다. 그러나 너희에게서 받은 마음은 잊지 않을 것이다.

새해 복 많이 받고, 오래도록 건강하렴.

2025년 1월 1일
철호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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