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퇴근길, 지하철 창에 비친 내 얼굴을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낯선 사람 같았습니다.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도 정작 나를 들여다본 적은 드물었던 모양입니다. 눈가에는 하루가 먼저 퇴근해 있었고, 어깨에는 말하지 못한 피로가 앉아 있었습니다.
회사 동료가 지나가며 말했습니다.
“고생 많으세요.”
흔한 인사인데도 괜히 울컥했습니다. 그 말이 요즘의 나에게도 필요한 줄 몰랐습니다. 괜찮은 척 오래 버티다 보면 자신에게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건네는 법부터 잊게 됩니다.
그 순간 가족 생각이 났습니다. 완벽해서 평온한 가족은 없습니다. 문제 없는 집안은 없다는 뒤늦은 깨달음처럼 우리 집에도 말하지 못한 걱정과 작은 서운함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하루가 끝나면 돌아갈 문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안심시킵니다.
현관문을 열면 아이들은 잠시 눈을 맞춥니다. 당신은 늘 하던 일처럼 식탁 위에 국과 반찬을 놓습니다. 특별한 장면은 아닙니다. 누구도 음악을 틀어주지 않고 조명도 바뀌지 않습니다. 다만 내가 들어오자 집 안의 공기가 아주 조금 움직입니다.
예전에는 그 풍경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밥은 때가 되면 차려지는 줄 알았고, 가족은 늘 그 자리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사랑은 떠들썩한 고백보다 매일 반복되는 일에 숨어 있다는 것을 늦게 알았습니다.
며칠 전 딸아이가 물었습니다.
“아빠, 왜 요즘에는 웃을 때도 피곤해 보여?”
그 말이 가슴 한가운데 조용히 내려앉았습니다. 웃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얼굴은 이미 지쳐 있었습니다. 아이는 내가 감춘 피로를 웃음 뒤에서 찾아냈습니다. 가족은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내가 숨기고 싶은 것부터 먼저 알아봅니다.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습니다. 부모와 남편이 가장 자주 하는 거짓말입니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야 식구들이 안심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가족은 강한 사람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함께 앉아 밥 먹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식탁에는 된장찌개 냄새가 났습니다.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와 물을 따르는 소리가 이어졌습니다. 된장찌개 한 그릇이 불러낸 가족의 식탁처럼, 밥상은 허기를 채우는 곳이면서 서로의 하루를 조용히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오늘은 어땠어?”
아무도 묻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당신이 내 앞에 국그릇을 놓아주는 손, 아이가 반찬을 내 쪽으로 밀어주는 작은 동작이 대답을 대신했습니다. 잘 버텼다고, 이제 잠시 쉬어도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가끔은 고맙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타이밍을 놓칩니다. 마음은 있는데 입이 늦습니다. 사랑은 많다고 생각하면서 표현은 늘 다음으로 미룹니다. 내일 말하지, 주말에 말하지, 조금 덜 피곤할 때 말하지. 그렇게 미룬 말은 서랍 속 영수증처럼 쌓여갑니다.
오늘은 무슨 기념일도 아닙니다. 꽃다발도 선물도 없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지금 말하고 싶습니다. 특별한 날에만 사랑을 확인한다면 평범한 날들은 너무 오래 외로워집니다.
가족에게 전하는 따뜻한 에세이라고 해서 거창한 말을 늘어놓을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말없이 차려준 밥 한 끼, 늦은 귀가를 기다려주는 불빛, 작은 손이 건네는 그림 한 장. 그런 것들이 무너지는 마음을 붙잡습니다.
사람은 혼자서도 살 수 있다고 큰소리칩니다. 하지만 지친 밤에는 누군가 곁에 있다는 사실 하나로 다시 숨을 쉽니다. 해결책을 주지 않아도 됩니다. 아픈 이유를 캐묻지 않아도 됩니다. 곁은 설명하지 않고도 건네는 위로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곁에 있는 시간이 무한하지 않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손을 잡을 수 있는 동안 나누어야 할 사랑은 언젠가가 아니라 오늘의 몫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영원히 기다려주는 배경이 아니라 함께 늙어가는 한 사람입니다.
나는 여전히 피곤할 것입니다. 내일도 걱정은 생기고, 가끔은 무뚝뚝한 얼굴로 현관문을 열 것입니다. 그래도 이제는 식탁에 앉기 전에 잠시 가족의 얼굴을 바라보려 합니다. 당연하다고 지나쳤던 평범한 기적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당신들이 곁에 있어서 다행입니다.
이 말은 고백이라기보다 숨에 가깝습니다. 힘들 때마다 나를 다시 살게 하는 짧은 호흡입니다.
그냥 전하고 싶었습니다. 특별한 이유 없이, 특별한 오늘이 아니어도.
지금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에게 나는 어떤 위로가 되어주고 있을까요.
선비천사의 다른 글은 브런치스토리에서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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