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칠이의 여름 | 폭염 속에서 만난 진짜 여름, 문학수필

 

차가운 공기가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밤낮없이 돌아가는 에어컨 바람에 어깨가 뻐근해질 무렵, 나는 비로소 노트북 모니터에서 눈을 뗐다. 자판 위에 올려둔 손끝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창밖은 장마가 끝나자마자 맹렬한 폭염 속으로 들어서 있었다. 하지만 나는 문을 걸어 잠근 채 인공의 서늘함 속에 섬처럼 갇혀 있었다. 머릿속은 오래 붙잡고 있던 문장들로 엉켜 있었고, 더 이상 글을 밀고 나갈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무작정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동 현관의 유리문을 미는 순간, 습하고 묵직한 더위가 기다렸다는 듯 얼굴을 덮쳤다. 마치 한증막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았다. 차갑게 닫혀 있던 모공들이 일제히 열리는 기분이었다.

산책로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귀를 채운 것은 매미 소리였다. 온몸을 쥐어짜는 듯한 울음이 아파트 단지 전체를 진동시키고 있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복날이면 마당 평상 밑에서 혀를 길게 내밀고 헥헥거리던 강아지, 땡칠이였다.

더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길을 천천히 걸었다.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도 제 빛깔을 또렷하게 지키는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연록색 잎사귀 사이로 탐스럽게 피어난 나무수국, 그리고 그 곁에서 불꽃처럼 붉게 타오르는 배롱나무였다.

배롱나무는 더위가 깊어질수록 더욱 선명해진다. 백일 동안 피고 지기를 반복하며 한여름을 붉게 물들이는 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배롱나무는 더위를 견디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더위가 되어 여름을 정면으로 지나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매미 소리가 가득한 산책로 모퉁이를 돌자 맑고 시끌벅적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 작은 물놀이장이 있었다. 어른의 눈에는 보도블록 몇 장을 치우고 만든 작은 분수대였지만, 아이들에게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아이들은 떨어지는 물줄기를 맞으며 소리를 질렀고, 바닥에 엎드려 마음껏 물보라를 일으켰다.

섭씨 35도를 웃도는 폭염도 아이들에게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아이들은 작은 물웅덩이에 갇혀 있지 않았다. 그 좁은 분수대는 아이들의 상상 속에서 끝없이 넓은 바다가 되었다.

돌아보니 좁은 공간에 갇혀 있었던 것은 물놀이장이 아니었다. 조건과 환경만 따지며 사유의 지평을 스스로 좁혀버린 내 시선이었다.

단지를 크게 한 바퀴 돌고 나니 옷은 땀으로 흠뻑 젖어 몸에 달라붙었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고 입이 벌어졌다. 혀도 절로 길게 늘어졌다.

흐르는 땀을 훔치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렇다.

지금 내 모습은 다름 아닌 그 옛날의 땡칠이였다.

에어컨 아래에서 고상한 문장만 붙들고 있던 나는, 이 솔직하고 우스꽝스러운 ‘땡칠이의 혀’ 앞에서 더는 그 문장들을 믿을 수 없었다.

폭염이 무서워 골방에 숨어 있던 나보다, 온몸으로 더위를 맞으며 헐떡이는 지금의 내가 훨씬 더 생생하게 여름을 살아내고 있었다.

체면도, 그럴듯한 포장도 모두 벗어던진 채.

붉은 배롱나무처럼.

그리고 땡칠이처럼.

그저 한여름을 온몸으로 지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후텁지근한 바람이 거실을 스쳐 지나갔지만 이상하게도 답답하지 않았다.

밖에서는 여전히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배롱나무 가지를 흔들고 있었고, 입안에는 뜨겁고 짠 땀맛이 남아 있었다.

그제야 진짜 여름이 내 몸 안으로 깊숙이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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