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 내내
배롱나무는 스스로의 껍질을 모두 벗어던졌다.
아무것도 감추지 않은 맨몸으로
긴 시간을 견뎠다.
그리고 모두가 그늘을 찾아 숨는 한여름.
달아오른 몸통 가장 깊은 곳에서
뜨거운 생명이 차오른다.
붉은 꽃송이가
툭, 툭, 터진다.
그늘 하나 내어주지 못하는 짧은 가지 끝.
배롱나무는 대신
꽃을 내어준다.
누군가 이 뜨거운 여름을 건너기를 바라는 듯,
붉은 입술 같은 꽃을
하늘로 조용히 밀어 올린다.
지친 하늘마저 숨을 고르는 오후.
쉬어 가던 매미 울음은
길가에 떨어진 붉은 꽃잎 위에서
잠시 여름을 내려놓는다.
배롱나무는 안다.
가장 뜨거운 계절은
가장 화려하게 피어야 견딜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폭염의 한복판에서도
묵묵히 붉은 꽃을 피운다.
오늘도 배롱나무는
상처를 꽃으로 바꾸는 법을
조용히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작품 해설
배롱나무는 봄에 스스로 껍질을 벗고, 가장 뜨거운 여름에 붉은 꽃을 피운다. 이 시는 그 생태적 특징을 인간의 삶과 연결한다.
고통은 숨기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과정이다. 그리고 충분히 견딘 시간은 결국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난다.
배롱나무는 그늘을 만들지는 못하지만, 꽃으로 여름을 위로한다. 그래서 이 시의 붉은 꽃은 희망이며, 인내이며, 다시 살아가는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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