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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수필

교사의 혼밥, 아이들이 먼저 알아챘다

by 선비천사 2025. 5. 21.

 

 

학교를 옮긴 지 며칠 안 되었을 무렵이었다.
점심시간,
급식실 한쪽 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새 교무실도, 낯선 얼굴들도
아직은 어색한 풍경이었다.

 

누구에게 먼저 말을 건네는 일도
선뜻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혼자 밥을 먹었다.

 

숟가락은 입으로 향했지만,
마음은 자꾸 딴 데를 향했다.

다음 날, 수업 시간에 무심코 말했다.
“어제 혼자 밥 먹었어.”

순간, 교실이 술렁였다.
“진짜요? 왜요?”
“같이 드시지 그랬어요!”
“다음엔 저랑 드세요!”

 

그 반응에
피식 웃음이 나왔고,
어쩐지 가슴은 살짝 먹먹했다.

 

아이들은 혼밥을 그냥 넘기지 않는다.

어른들은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지나치지만,
아이들은
그런 이야기를 마음의 사건으로 받아들인다.

수업을 하며 많은 말을 나눴지만
정작 마음이 가까워지는 순간은
이렇게 소소한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혼자 밥 먹었어.”

 

이 말 한마디가
학생들과 나 사이의
보이지 않던 벽을
조용히 허물어 주었다.

신뢰는 큰 가르침에서 오지 않는다.
조금의 솔직함,
작은 외로움의 나눔에서 시작된다.

아이들은 권위보다 진심을 먼저 알아본다.
밥 한 끼에 놀라주고,
그 놀람을 다정함으로 돌려준다.

 

그날 이후,
급식실 풍경은 조금 달라졌다.

같은 자리, 같은 밥이어도
이제는 마음이 다르다.

혼자 먹는 날이 있어도,
혼자 있는 기분은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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