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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수필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학생들의 눈을 먼저 봤을 겁니다

by 선비천사 2025. 5. 23.

 

 

― 한 퇴직 교사의 이야기

 

퇴직 후, 아내와 함께 저녁 식탁에 앉으면 가끔 되묻습니다.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간다면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싶어요?”

 

아내는 단호합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죽기 살기로 공부해서
법조인이든 의사든, 이름값 있는 직업을 가졌을 거라고요.
공부가 전부는 아니지만, 결국 인생에서 많은 것을 좌우한다는 걸
이제야 실감한다고요.

 

그 말을 들을 때면 나도 잠시 생각에 잠깁니다.
예전의 나였다면 출세나 성공을 떠올렸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나는 다시 교단에 서서, ‘진짜 교사’가 되어보고 싶습니다.

 

30여 년간 교직에 몸담았습니다.
책상 위 시험지보다 아이들 눈을 더 먼저 봤어야 했는데,
늘 업무와 평가에 쫓기며
진짜 중요한 것들을 놓친 날이 많았습니다.

 

그땐 몰랐습니다.
엎드린 채 수업을 듣던 아이의 몸짓이
그저 게으름이 아닌 ‘신호’였다는 걸.
질문에 대답을 피하던 아이가
사실은 집안일로 밤을 새운 아이라는 걸요.

 

지금도 생각납니다.
예술적인 감각이 뛰어나던 한 학생.
수업 중 연습장에 그림을 그리고 있어
몇 차례 엄하게 꾸짖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아이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지만,
어느 날 제 책상 위에 쪽지를 놓고 떠났습니다.

 

“선생님, 그림이라도 그리고 있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어요.”

 

그땐 그냥 넘겼지만, 그 말이 자꾸 생각납니다.

세월이 흐른 뒤, 우연히 들른 갤러리에서
그 학생의 이름을 발견했습니다.
캔버스 아래 적힌 한 문장.

 

“그림은 나의 피난처였다.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던 시절.”

 

그 그림 앞에서 나는 한참 동안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그 아이에게 나는 어떤 교사였을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주는 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무엇이 옳다, 그르다를 따지기보다
조금 더 따뜻한 말, 한 걸음 더 가까운 눈빛을 건넸을 겁니다.

 

우리는 시간을 되돌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실수를 마음에 새기고
지금 누군가의 이야기를 더 깊이 듣는 것으로
다시 쓰는 인생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교실은 떠났지만,
나는 아직 누군가의 마음을 읽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조용히, 작게, 그러나 분명하게 신호를 보냅니다.
그 신호를 놓치지 않는 교사.
그게 내가 다시 살아도 되고 싶은,
진짜 ‘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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