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일이었다.
누군가 내 필통을 훔쳤다.
울고 있던 내게 선생님은 말했다.
“그래도 ○○는 착하잖아. 그냥 참자.”
그 말이 위로로 들리지 않았다.
억울한데도 참아야 한다는 말.
그게 착한 거라면,
나는 착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릴 적 나는 착하다는 말이 좋았다.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이 벅차고,
스스로 괜찮은 사람 같았다.
흥부처럼 살면 복이 온다 했고,
착한 사람은 결국 웃는다고 배웠다.
그래서 양보했고,
조용히 참았고,
항상 맞춰줬다.
하지만 세상은 달랐다.
양보하는 사람은 뒤로 밀리고,
참는 사람은 무시당했다.
욕심 많은 사람이 원하는 걸 가져갔고,
소리 내지 않는 사람은 잊혔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렇게 살아서 뭐가 남지?’
‘나는 왜 늘 착해야 하지?’
심리학자들은 그걸 ‘착한 아이 콤플렉스’라고 불렀다.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나를 지우고 살아왔다는 사실이
가끔은 참 서글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또 생각한다.
그 착함은 나의 나약함이 아니라
내가 끝까지 놓지 않은 고집이었다고.
상처받고도 미워하지 않으려는 마음,
다치고도 남을 먼저 걱정하는 마음.
그 마음 때문에 손해를 봤지만,
그 마음 덕분에 지킨 사람들도 있었다.
착하게 산다는 건
세상이 말하는 성공과는 거리가 멀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누군가에게 깊은 상처를 준 기억이 없다.
그게 나에게는
조용하지만 분명한 위안이 된다.
나는 아직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착하게 산다는 건
정말 잘 사는 길이었을까?
아니면 스스로를 속인 삶이었을까?
그 질문의 답은 아직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는 내 삶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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