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다.
햇살은 부드럽고, 바람은 가볍다.
창밖 나뭇잎이 흔들리는 걸 보며
나는 문득, 그녀를 떠올린다.
그녀는 나의 봄이었다.
하지만 그 봄은 언제나 따뜻하지 않았다.
처음 그녀를 만난 건,
벚꽃이 한두 송이 피어나던 날이었다.
그녀는 말수가 적었고,
가끔씩 웃을 때마다 눈이 살짝 접히는 모습이
유난히 인상 깊었다.
나는 쉽게 빠져들었다.
그녀는 조용히 다가왔고,
나는 소리 없이 기울었다.
하지만 봄은,
언제나 오래 머물러 주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조금씩 멀어졌다.
전화는 짧아졌고,
말에는 공백이 생겼다.
나는 모른 척했다.
아니, 모른 체하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은 이미
그녀의 변화 속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녀를 그리워하는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오히려 더 그녀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녀도 아팠을까?
그녀도 무너지는 마음을 애써 감추며
벚꽃잎 흩날리는 그 길을 걸었을까?
당신은 그런 사람을 만난 적 있나요?
다가올 줄 알면서도,
두려워서 외면했던 사람.
이제야 안다.
그녀는 내게서 도망친 게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해 떠났다는 걸.
그리움은,
이해가 동반될 때 비로소 조용히 피어난다.
그것은 억지로 지우려 할수록 더 또렷해지는 감정.
그래서 나는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그녀를 탓하지도, 잊으려 하지도 않기로.
그냥, 그리운 사람은
그리워할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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