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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수필

로봇이 다 해주는 세상, 사람은 무엇을 남길까

by 선비천사 2025. 8. 31.

 

 

아내를 퇴근길에 맞이해 차에 태웠다.
지친 얼굴이 금세 눈에 들어왔다.

 

회사와 집 사이의 짧은 거리가, 때론 끝없는 고갯길처럼 보이는 날이 있다.
그날도 그랬다.

 

차를 몰아 자동세차기에 들어섰다.
거대한 솔이 회전하며 차체를 휘감았다.
물줄기가 와르르 쏟아지고, 거품이 차창을 덮었다.

 

그 순간, 아내가 중얼거렸다.

 

“아~ 피곤해, 사람도 자동세차처럼 씻겨주는 기계가 있으면 좋겠다.”

 

나는 웃으며 대꾸했다.
“목욕탕 가면 세신사 있잖아.”

 

아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다른 사람이 내 몸을 만지는 건 싫어. 그냥 기계가 알아서 해주면 좋겠어.”

 

거품이 흘러내리며 시야를 가렸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아마 곧 로봇이 목욕을 시켜줄 거야.
옛날 왕을 궁녀들이 씻겨주던 것처럼,
이제는 로봇이 대신해주겠지.”

 

아내는 피식 웃었다.
“목욕도 로봇이, 밥도 로봇이, 빨래도 로봇이, 아기 낳는 것도,

간병도 로봇이 한다면, 그럼 사람은 뭘 하지?”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물음이, 창문에 맺혔다가 사라지는 물방울처럼 오래 마음에 남았다.

 

 

우리는 이미 반쯤 로봇에게 삶을 맡긴 시대에 살고 있다.
스마트폰이 기억을 대신하고, 네비게이션이 길을 찾아준다.

 

냉장고가 장을 보고, 청소기가 집안을 누빈다.
편리하다는 안도 뒤에는 묘한 허전함이 스며 있다.

 

자동세차 속 물방울이 차창을 두드리듯,
아내의 질문은 내 마음을 두드리고 흘러내렸다.
반짝이며 사라졌지만, 그 흔적은 오래 남았다.

 

 

인류의 역사는 ‘덜 힘들게 사는 방법’을 찾아온 역사였다.
소와 말이 밭을 갈고, 증기기관이 사람의 팔을 대신했다.
전기가 어둠을 밀어냈다.

 

이제 로봇은 단순한 손발을 넘어 사고와 판단까지 흉내 낸다.
언젠가는 공부조차 필요 없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때 인간은 무엇으로 존재할까.
땀 흘릴 기회조차 잃은 인간은 한낱 고요한 그림자가 될까.
아니면 오히려 그제야, 삶의 의미를 묻기 시작할까.

 

 

나는 거품으로 가득 찬 유리 너머를 바라보았다.
세차기가 차를 흔드는 소리가 심장박동처럼 울렸다.

 

로봇이 모든 일을 대신하는 세상.
누구도 굶지 않고, 누구도 고되지 않은 세상.

 

그러나 그곳에서 웃음은 어디서 생겨날까.

 

행복은 혹시, 고단함의 그림자 속에서만 드러나는 빛이 아닐까.
노동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몸을 움직이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행위 아닐까.

 

만약 그것마저 로봇이 가져가 버린다면,
우리는 어떤 표정으로 하루를 살아가게 될까.

 

아내의 농담 같은 말 속에는 피로와 바람, 그리고 은근한 불안이 섞여 있었다.
‘나는 이렇게 지쳐 있는데, 언젠가는 이 지침조차 필요 없는 시대가 올까?’
그런 물음 말이다.

 

세차가 끝나고 차가 밖으로 나왔다.
햇빛이 차체에 반사되며 번쩍였다.
세차 전과는 전혀 다른 차였다.

 

아내는 와이퍼가 물기를 털어내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그래도 세차 끝나고 나면 속이 다 시원해. 몸도 마음도 새로워진 것 같아.”

 

나는 그 말을 곱씹었다.
자동세차가 아무리 편리하다 해도,
기계 안으로 차를 몰고 들어가는 건 결국 사람이다.

 

기계가 아무리 닦아도, ‘깨끗하다’고 느끼는 건 마음이다.

 

 

아마도 로봇 시대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로봇이 밥을 차려줄 수는 있어도, ‘맛있다’고 웃는 건 사람이다.
로봇이 아기를 대신 낳을 수는 있어도, 울음소리에 가슴이 떨리는 건 부모다.
로봇이 간병을 해줄 수는 있어도, 손을 잡으며 눈물이 번지는 건 인간이다.

 

그러므로 아내의 질문은 결국 이렇게 바뀐다.
“로봇이 다 해주는 세상에서, 사람은 무엇을 남길까.”

 

자동세차장에서 빠져나온 차는 반짝이며 도로 위를 달렸다.
아내는 창가에 머리를 기대고 조용히 졸고 있었다.

 

나는 그 옆에서 생각했다.
세상 모든 로봇이 인간을 대신하더라도,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며 걱정하는 이 마음만큼은 기계가 흉내 낼 수 없으리라.

 

그리고 그 순간, 또 다른 물음이 따라왔다.
‘그 마음조차 필요 없는 시대가 온다면, 그땐 우리는 무엇으로 인간이라 불릴까.’

 

차창 너머 햇살이 잠시 눈부셨다.
나는 답을 찾지 못한 채, 그 물음을 조용히 품고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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