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가 끝난 산은 말이 없었다.
바람도 조심스레 흐르고, 흙을 던지는 손짓은 이승과 저승을 나누는 신호 같았다.
나는 지팡이를 짚고 무덤 사이 길을 올랐다.
신발 밑에서 흙이 눌려 터지는 소리가 잔뜩 젖은 듯 끈적였다.
코끝에는 흙냄새가 짙게 배어들었고, 계곡에서 불어온 바람은 차갑게 살결을 스쳤다.
삶은 늘 그렇듯, 하나의 얼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상수리 열매가 떨어져 땅을 울렸다.
짧은 울림이 목탁처럼 산을 두드렸다.
가지 위 새소리는 기도처럼 흘러나왔다.
계곡 물 위로 도화잎이 흘러갔다.
너무 가벼워 오래 머물 수 없었다.
발밑에서는 들개가 혀를 늘어뜨렸고, 까마귀는 검은 울음을 토했다.
그 순간, 동굴 깊은 곳에서 바람이 스쳐 갔다.
낮은 신음처럼 들려왔다.
그 소리는 단순한 바람이었을까,
아니면 누군가의 목소리였을까.
나는 잠시 멈춰 섰다.
손에 든 지팡이가 땀으로 미끄러워졌다.
죽음은 늘 이렇게 가까이서 숨을 쉬는 듯 다가왔다.
뒤따르던 아내의 눈빛이 반짝였다.
눈가엔 아직 눈물이 맺혀 있었는데, 그 눈물 너머로 햇빛이 작은 별처럼 빛났다.
떠난 이는 없지만, 남은 자는 여전히 먹고, 걷고, 웃어야 한다.
그 무게가 부재보다 더 무거웠다.
그날, 산 너머에 쌍무지개가 걸렸다.
비가 갠 하늘 위로 두 줄의 빛이 겹쳐 걸렸다.
하나는 익숙했고, 다른 하나는 뜻밖이었다.
나는 오래 바라보았다.
그때 아내가 웃으며 말했다.
“저기도 다리가 있네.”
나는 그 말을 잊지 못한다.
삶과 죽음이 서로 팔을 내민 듯,
두 세계가 빛으로 연결된 듯했다.
무지개는 곧 사라졌다.
그러나 내 마음에는 오래 남았다.
언젠가 나도 저 다리를 건널 것이다.
그러나 그날 나는,
잠깐이지만 확실히 느꼈다.
죽음이 삶을 가로막는 벽이 아니라,
삶이 다른 빛깔로 번져가는 또 하나의 시작일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이제 무지개를 볼 때, 나는 죽음을 떠올리지 않는다.
죽음은 여전히 두렵지만,
무지개는 그 두려움 위에 놓였다가 이내 사라지는 다리다.
언제 다시 걸릴지 알 수 없는 다리.
그 불확실 속에서 나는 살아간다.
그리고 생각한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어둠 속에도,
어쩌면 이미 다른 빛깔의 무지개가 숨 쉬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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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사귀의 거처 이야기) https://sunbicheonsa.tistory.com/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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