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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수필

요세미티에서 배운 것들: 자연, 침묵, 그리고 사람

by 선비천사 2025. 8. 18.

 

(사진 1)

 

                                                                                   (사진 2)

                                                                                      (사진 3)

 

 

미국 캘리포니아, 그 넓은 땅 위에서 요세미티는 말이 없었다.
거대한 침묵 속에서 우리는 다섯 명, 각자의 발걸음으로 그 침묵을 걸어 들어갔다.

 

여동생 부부, 우리 부부, 그리고 누나.
다른 시간에 다른 삶을 살아온 우리가 하나의 자연 속에서 나란히 걷는 그 순간,
말은 줄었고 마음은 넓어졌다.

 

공원 입구를 지나자 바람은 제 몸보다 더 큰 나무들 사이를 유영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숨결이 온몸을 감쌌다.

 

누나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하늘을 올려다보며 조용히 한마디 했다.
“이런 데선, 별일 없던 게 제일 고맙네.”


자이언트 세쿼이아 숲.(사진 1)

 

우리는 말없이 나무들 사이를 걸었다.

 

여동생 남편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고,

내 아내는 숲의 향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여동생은 나무껍질에 손을 얹고 한참을 가만히 서 있었다.
마치 그 거대한 생명과 조용히 대화라도 하는 듯.

 

“이 나무는 몇 살쯤 됐을까?” 내가 물었고,
“천 년 넘었겠지. 조선 시대보다 오래됐다고 하더라.” 여동생이 대답했다.

 

그 말에 우리는 모두 조용히 웃었다.
이 나무가 살아온 세월 앞에서, 지금 우리가 걷는 이 순간이 얼마나 작고 귀한지를 문득 깨달았다.


둘째 날엔 하프 돔을 바라보며 전망대에 올랐다.(사진 2)

 

구불구불한 길을 차로 달리는 동안 우리는
서로 농담도 하고, 사소한 음악 취향으로 티격태격하기도 했다.

 

누나는 뒷자석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유리창 너머를 멍하니 바라보는 눈빛이 깊었다.

 

전망대에 도착하자 우리는 말이 또 줄었다.

 

그곳엔 거대한 바위가 있었고,
그 아래 흐르는 시간은 너무나 조용했다.

 

아내는 내 손을 가볍게 잡았고,
여동생 남편은 무릎을 꿇고 카메라 앵글을 잡았다.

 

누나는 바위에 앉아 한참을 그 풍경을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사람 마음도 저 바위처럼 잘 안 갈라졌으면 좋겠네.”

 

그 말이, 하루의 감정을 정리해주는 문장처럼 가슴에 남았다.


터널 뷰.(사진 3)

 

해가 지기 전 우리는 터널 뷰에 도착했다.

 

주차장에서부터 다들 조용했고, 아무도 서두르지 않았다.

 

전망대에서 풍경이 펼쳐지는 순간,
여동생은 숨을 삼켰고,
남편은 “이런 곳에선 말이 필요 없네”라고 했다.

 

누나는 눈을 감고 있었다.
내 아내는 내 어깨에 기대었고,
나는 그 다섯 사람의 기척을 마음으로 느끼고 있었다.

 

요세미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바위와 나무, 하늘과 안개로 우리를 품어주었다.

 

그리고 우리도 아무 말 없이,
서로의 존재를 더 또렷이 느꼈다.


이 여행에서 남은 것은 사진 몇 장이 아니라,
서로를 바라보던 순간의 눈빛과 침묵이었다.

 

우리는 자연을 보러 간 줄 알았지만,
결국 서로를 다시 보러 간 여행이었는지도 모른다.


요세미티에서 찍은 사진은 많지만,
가장 선명하게 남은 건 카메라 속 장면이 아니라,
그 순간의 온기와 숨결이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자연을 '보는 법'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서로를 '느끼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지금, 여행이 끝난 후에도
요세미티는 내 안에서 여전히 바람을 불고 있다.

 

가끔씩, 고요한 순간에 그 숲의 냄새가 떠오르고,
그날의 햇살이 다시 마음을 비춘다.


누나는 여전히 말이 없지만, 그날 이후 웃음이 잦아졌다.
여동생 부부는 여행에서 돌아온 뒤, 부모님을 먼저 찾아뵈었다고 했다.
아내는 여전히 조용히 내 손을 잡고, 나는 그 손의 온기를 더 자주 느끼게 된다.

 

우리는 요세미티를 다녀온 것이 아니다.
그곳에서 우리 각자가, 조금씩 더 따뜻한 사람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 조용한 변화를 만든 건,
결국 함께 걸어간 다섯 사람의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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