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정각.
아직 어둠이 방 안을 채우고 있지만
시계는 내게 더 이상 눕지 말라고 속삭인다.
머릿속은 이미 분 단위로 쪼개진 하루로 분주하다.
1교시 국어, 2교시 문법, 3교시는 상담... 그리고 종례.
‘어김없이 종이 울릴 것이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시계는 나를 더 촘촘하게 다룬다.
08:40, 땡. 교실로 입장.
아직 졸린 눈을 비비는 아이들 앞에서 인사를 건넨다.
그 순간부터 나는 ‘선생님’인 동시에 ‘땡돌이’가 된다.
50분. 땡. 다음 교실.
50분. 땡. 또 다른 반.
50분. 땡. 점심시간.
수업은 흐르지 않는다. 울린다.
종소리에 맞춰 움직이는 나날 속,
나는 내 시간도, 내 리듬도 점점 놓쳐버린다.
문득 생각한다.
“나는 왜 시계의 주인이 아니라, 시계의 종이 되었을까?”
원래 시계는 인간이 만든 도구였다.
그러나 지금 나는 매일, 그 도구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아이들의 배움을 더 잘 돕기 위해서지만,
때때로 그 ‘정해진 시간’은
가장 중요한 것을 지나치게 만든다.
어떤 날은
아이 하나가 갑자기 말을 꺼낸다.
표현이 서툴러 말끝을 맴돌지만,
곧 종이 울린다.
“선생님, 다음 수업 가셔야죠.”
나는 안다.
저 말은 아이의 배려인 동시에,
시간이 더는 허락되지 않는다는 선언이다.
시계는 정확하지만,
교육은 그렇게 단정할 수 없다.
시계는 공평하지만,
아이마다 배움의 속도는 다르다.
시계는 효율을 따지지만,
교육은 기다림이다.
며칠 전, 하루 동안 시계를 벗어보았다.
아이들과 운동장에 나가 자유롭게 대화했다.
"얘들아, 오늘은 시간표 없이 우리끼리 해볼까?"
처음엔 어색해하던 아이들이 웃기 시작했다.
그날은 종 대신,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며 흐르는 시간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매주 일요일,
‘무시계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알람 없이 일어나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잠드는 하루.
그 하루만큼은 땡돌이에서 벗어난다.
물론, 교사의 삶은 종을 거스를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안다.
종이 울린다고 해서, 가르침까지 끝나야 하는 건 아니다.
시계는 흐르고,
종은 울리고,
나는 또 교실로 향한다.
그러나 오늘도 나는 다짐한다.
아이들의 눈을 먼저 보고,
시간은 그다음에 보자.
우리는 땡소리 속에서 살아가지만,
진짜 교육은
정해진 시간이 아니라,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에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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