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랑이처럼, 그녀

 

 

열 살쯤 더 늙은 지금, 문득 그녀를 다시 만났다. 봄 햇살이 들판을 어루만지는 어느 날이었다. 그렇게 다시 마주한 그녀는 여전히 아지랑이 같았다. 눈앞에 있는데 손에 닿지 않는, 가까이에 있어도 어디론가 흩어지는.

 

 우리는 헤어졌고, 꽤 오래도록 각자의 시간을 살아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우리 사이의 거리를 멀게 하지 못했다. 어쩌면, 떨어져 있었기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그리움이라는 건 이상하게도, 부재 속에서 더 진해지니까. 그녀는 언제나 내 마음 어딘가에서 하늘거리고 있었다. 봄날 들판의 아지랑이처럼.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여전했다. 말간 웃음, 가벼운 말투, 그리고 늘 나를 한발 물러서게 하는 그 특유의 거리감까지. “이젠 그만 잊으라”는 말도 웃으며 내뱉는다. 하지만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다시 만났다고 해서 마음이 정리되는 것도 아니고, 보내준다고 해서 정말 떠나보내지는 것도 아니다. 그녀는 떠날 수 있는 사람이었고, 나는 여전히 보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원망은 없었다. 오히려 감사했다. 그녀가 있었기에 내 청춘이 조금은 반짝였다고 생각했다. 만나지 못했던 시간에도, 그녀는 내 안에서 노래처럼 흘러나왔다. 꽃비처럼.

 

 사람의 인연이란 건 참 묘하다. 이룰 수 없었던 만남이기에 더 오래 남고, 잡히지 않았기에 더 깊이 스며든다. 그녀는 내 인생의 아지랑이였다. 보이지만 만질 수 없고, 가까우면서도 닿을 수 없는.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조금 더 복잡해지고, 조금 더 아름다워진다.

 

 아직도 나는 생각한다.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는 없을까. 이미 자유로운 그녀를, 다시 잡을 수는 없을까. 하지만 그런 꿈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그 마음을 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봄날 들판의 작은 씨앗이 태풍이 될 수도 있는 것처럼, 작고 소소한 감정이 삶 전체를 흔들어놓을 수 있다.

 

 그녀는 이제 멀리 날아가버렸지만, 나는 여전히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숨을 쉰다. 흔적은 마음속에 남아 있다. 바람 따라 흘러가는 강물처럼, 내 마음도 여전히 그녀의 방향으로 흔들린다. 그런 흔들림이야말로 내가 살아 있음을 말해주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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