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의 범람, 너무 많은 모양을 견뎌온 물

수면(水面)의 범람

 

그릇이 요구하는 모양대로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동그란 곳에서는 둥글어지고
네모난 곳에서는 네 귀퉁이를 얻었다.

오래 담겨 있으니
그 모서리가 내 것인 줄 알았다.

신발 밑창이 지나갈 때마다
나는 더 낮은 곳으로 흘렀다.

던져진 오물과 뱉어진 말들을
바닥 깊이 가라앉혔다.

맑아진 것은 물이었고
높아진 것은 둑이었다.

가라앉은 것들이 쌓일수록
고요에도 수위가 생겼다.

마침내
마지막 눈금을 넘었다.

가장 낮은 곳에 눌려 있던 물이
수면으로 돌아왔다.

납작하던 수면들이
일제히 각을 세운다.

파도가 아니다.

물에게 모양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은 모양을 견뎌온 것이다.

물은 그릇을 깨뜨리지 않았다.
다만 넘쳤다.

그릇 밖으로 쏟아진 뒤에도
물은 한동안 네모났다.

그제야 알았다.

가장 오래 남는 그릇은
깨진 뒤에도
물속에 남아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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