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음의 방
생각이 너무 많을 때, 우리는 왜 스스로에게 갇히는가

방은 조용했다.
텔레비전은 음소거였고, 노트북에는 빈 문서만 떠 있었다. 커서는 규칙적으로 깜빡이며 첫 문장을 기다렸다. 아무 소리도 없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장 시끄러운 것은 방이 아니라 내 머릿속이었다.
사람들은 이것을 잡념이라고 부른다.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잡념은 소음이 아니라 하나의 방이다. 한 번 들어가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마음속 공간이다.
나는 오늘도 그 방 안에 앉아 있었다.
처음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며칠 전 친구와의 대화였다.
헤어질 무렵, 나는 농담이라며 던진 말을 아직도 후회한다. 친구는 잠시 웃음을 멈췄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표정이 자꾸 떠오른다.
정말 기분이 상했던 걸까.
아니면 그저 내가 혼자 의미를 만들어 내고 있는 걸까.
이미 끝난 대화인데도 머릿속에서는 다른 결말이 계속 재생된다. 그때 이렇게 말했더라면, 조금 더 웃어넘겼더라면, 괜찮았을까.
시간은 앞으로만 흐르는데 생각만 자꾸 뒤를 돌아본다.
친구의 표정이 사라질 즈음이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
이번에는 집안일이다.
미뤄 둔 일, 해결하지 못한 대화, 생활비, 앞으로의 계획.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은 차례대로 의자를 끌고 와 내 앞에 앉는다.
한 가지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생각이 시작된다.
조용한 방인데도 내 안에서는 수십 명이 동시에 말을 걸어온다.
그때 문득 데카르트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 문장은 분명 인간의 존엄을 말한다.
하지만 생각이 멈추지 않는 밤에는 조금 다르게 들린다.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지쳐 버리는 순간도 있다.
사람들은 생각이 많아질 때 명상을 한다.
산책을 하기도 하고, 기도를 하기도 한다.
나도 눈을 감아 본다.
하지만 눈을 감는다고 생각까지 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생각을 비워야 한다’는 또 하나의 생각이 생긴다.
생각을 멈추려는 노력마저 새로운 잡념이 되는 것이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생각이 아니라 생각을 통제하려는 욕심이었다.
생각은 원래 흐르는 것이다.
억지로 막으려 할수록 더 거세진다.
바로 그 순간 노트북에서 미지근한 열기가 허벅지로 전해졌다.
아무 의미도 없는 작은 온기였다.
하지만 그 감각이 나를 현재로 데려왔다.
나는 노트북의 무게를 느꼈다.
소파의 촉감을 느꼈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밤공기를 느꼈다.
그 짧은 순간만큼은 친구의 표정도, 미래의 걱정도 내 곁에 없었다.
생각은 과거와 미래를 끝없이 오간다.
하지만 몸은 언제나 현재에 머문다.
어쩌면 우리가 현실을 잃는 이유는 생각이 많아서가 아니라, 현재를 느끼는 감각을 자주 놓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이후로도 내 머릿속의 잡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후회는 찾아오고 걱정도 문을 두드린다.
다만 예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
나는 그 잡음과 싸우지 않는다.
잡음을 없애려 애쓰는 대신, 지금 손에 닿아 있는 감각을 먼저 바라본다.
따뜻한 커피잔.
의자에 닿는 몸의 무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끝.
그 사소한 감각들이 나를 현실로 붙잡아 준다.
아마 인간은 평생 생각의 방을 완전히 떠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유는 우리를 성장시키고, 때로는 우리를 지치게 한다.
중요한 것은 그 방을 부수는 일이 아니다.
가끔 창문을 열어 바깥 공기를 들이는 일이다.
오늘도 방은 조용하다.
내 머릿속 역시 완전히 고요해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나는 빈 문서 앞에 다시 앉는다.
생각을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각을 흘려보내기 위해.
그리고 첫 문장을 적는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생각에게 먹히는 사람이 아니라, 생각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기억하고 싶은 한 문장
우리를 가장 지치게 하는 소음은 세상 밖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시작된다.
생각은 과거와 미래를 떠돌지만, 몸은 언제나 현재에 머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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