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마다 평생 한 번은 반드시 지나야 하는 터널이 있다.
나에게 그 터널은 아내를 떠나보내던 시간이었다.
지금도 자동차를 타고 터널을 지날 때면 주황빛 조명이 차창을 스쳐 지나간다. 콘크리트 벽을 타고 되돌아오는 타이어 소리를 듣고 있으면, 오래전의 기억이 조용히 되살아난다.
예전에는 터널이 그저 길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삶이 무너져 내린 뒤에는 생각이 달라졌다. 그제야 알았다. 터널은 도로 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인생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터널이 있다. 그 길이 언제 시작되고 언제 끝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누구도 대신 지나줄 수 없는 길이라는 사실이다.
내 삶도 그 터널 앞에서 멈춰 섰다.
그때까지 내 일상은 평범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퇴근하면 아내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갔다. 특별한 일은 없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평범한 하루가 가장 큰 행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이유를 알 수 없는 무기력과 우울이 찾아왔다. 마음이 조금씩 어두워질 무렵, 아내는 난치병 진단을 받았다.
처음에는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 믿었다.
병원을 옮겨 보기도 하고, 좋다는 치료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기도도 했다. 하지만 병은 우리의 간절함보다 빨랐다.
병실에서 아내의 손을 잡고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날이 갈수록 야위어 가는 손을 바라보면서도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마지막 심전도 소리가 멈추던 날.
병실은 믿기 어려울 만큼 조용했다.
창밖에서는 평소처럼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고, 병원 복도에는 일상이 그대로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내 시간만은 그 순간 멈춰 버렸다.
침대 옆 의자는 그대로였지만,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
아내는 그렇게 내 곁을 떠났다.
가장 큰 기둥을 잃은 집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흔들렸다.
그 슬픔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아들도 같은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어느 날 밤이었다.
불이 꺼진 방문 틈으로 거친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아들은 벽만 바라본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눈은 떠 있었지만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은 사람 같았다.
나는 그 아이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부모라면 자식을 지켜 줄 수 있다고 믿었는데, 가장 힘든 순간에는 곁에 앉아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날 우리는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같은 시간을 견뎠다.
시간이 모든 상처를 지워 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견딜 수 있도록 사람을 조금씩 바꾸어 놓았다.
아들과 함께 잠을 이루지 못하던 어느 새벽이었다.
창문 틈으로 가느다란 햇살 한 줄기가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풍경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그 작은 빛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나는 아들의 손을 꼭 잡았다.
살이 빠져 뼈마디가 그대로 느껴졌다.
그 손을 붙잡은 채 오래 울었다.
그날 이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길가에 피어 있는 작은 풀꽃 하나도 쉽게 지나칠 수 없었다.
지하철에서 지친 얼굴로 졸고 있는 사람을 보면 괜히 마음이 쓰였고, 무거운 짐을 들고 천천히 걷는 노인의 뒷모습에도 오래 시선이 머물렀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풍경들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고통은 사람을 강하게 만들기보다 타인의 아픔을 먼저 알아보게 만든다.
나는 그 사실을 상실을 통해 배웠다.
돌이켜 보면 나는 환한 날보다 어두운 날에 더 많은 것을 배웠다.
모든 것이 순조롭던 시절에는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는 일도, 별일 없이 하루를 마치는 일도 당연하게 여겼다.
하지만 평범한 하루는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매일 아무 일 없이 함께 웃을 수 있다는 것은 삶이 우리에게 잠시 빌려준 선물이었다.
사람은 상실을 통해 비로소 평범한 하루의 소중함을 배운다.
이 문장을 예전의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은 마음으로 안다.
사람은 밝은 곳에서는 더 멀리만 바라본다.
더 높은 곳, 더 많은 것, 더 큰 성공을 향해 달려간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는 가까이에 있는 작은 온기를 발견하게 된다.
따뜻한 손길 하나.
짧은 안부 한마디.
평범한 저녁 식사.
무사히 맞이한 하루.
행복은 거창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잃고 나서야 깨닫는 일상 속에 숨어 있었다.
지금도 가끔 아들과 함께 자동차를 타고 터널을 지난다.
주황빛 조명이 차창을 스쳐 지나가고, 길게 이어진 불빛이 하나의 선처럼 흐른다.
문득 옆자리를 바라본다.
마음의 긴 터널을 견뎌 낸 아들이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앞으로도 크고 작은 터널을 만나게 될 것이다.
삶은 언제나 밝은 길만 이어지지 않는다.
예상하지 못한 상실도,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도 다시 찾아올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두렵지 않다.
터널은 끝없는 어둠이 아니라 언젠가 지나가는 길이다.
그 사실을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차는 터널의 출구를 향해 달린다.
눈부신 햇살이 차 안으로 쏟아진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아들도 아무 말이 없다.
그 침묵이 오히려 많은 것을 말해 준다.
오늘도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누군가는 지금 막 터널에 들어섰고, 누군가는 그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출구의 빛을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터널을 피하는 일이 아니라, 끝까지 걸어 나오는 일이다.
나 역시 오늘도 내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
언젠가 또 다른 터널을 만나더라도, 그 끝에는 다시 빛이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믿음을 품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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