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잔을 들자
술빛이 먼저 흔들렸다.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잔 속의 얼굴이 먼저 일그러졌다.
밤은 낮게 가라앉아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작은 빛 하나만 남아 있었다.
유리잔 가장자리에 맺힌 물기가
조용히 떨렸다.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사람들은 말한다.
생각은 머리에서 시작된다고.
어떤 이는 심장을 말한다.
그러나 그날의 나는
머리도, 가슴도 아닌
어딘가 빈자리처럼 느껴졌다.
창밖에서 새가 울었다.
소리는 또렷했지만
내 안에 닿지 않았다.
꽃향기가 스쳤다.
향기는 분명했지만
오래 머물지 않았다.
세상은 제자리에 있었는데
내 마음의 주소만
잠시 지워진 것 같았다.
우리는 쉽게 말한다.
마음대로 하라고.
하지만 마음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잊겠다고 하면 더 선명해지고
놓겠다고 하면 더 오래 남는다.
붙들겠다고 하면
손을 빠져나간다.
잔을 다시 기울였다.
술빛이 흔들리자
그 안에 비친 이름도 함께 흔들렸다.
나는 나인데
고정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내 마음의 주소를 옮겨놓고,
어떤 기억 하나가
번지를 바꿔버린다.
그제야 알았다.
마음은
내 몸 안에 있지만
완전히 내 소유는 아니라는 것을.
어쩌면 마음은
잠시 머무는 우편물 같다.
내 이름이 적혀 있지만
항상 내가 보낸 것은 아니다.
술잔 속 얼굴은
여전히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바로잡지 않았다.
내 마음의 주소가
오늘 이 자리인지,
이미 다른 곳으로 옮겨갔는지
끝내 확인하지 않았다.
다만
잔을 내려놓은 자리 위에
조용한 온기 하나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흔들림이
아직 나를 통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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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시인의 내면인 ‘마음’을 탐색한 시 이군요. 즉, 부제와 시 속에도 나오는 ” 마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 에 대하여 진지하게 답을 찾고자 한 시이군요. 그 탐구 결과는,
마음은
내 몸 안에 있지만
완전히 내 소유는 아니라는 것을
이군요. 이 시를 읽으면서 새삼 무엇이 마음일까를 생각해 보게 되네요. 인터넷 표준국어대사전에 ‘마음’을 검색해 보니, 사람이 본래부터 지닌 성격이나 성품으로 정의 되어 있더군요. 그런데 이 말의 용례를 보니, 희로애락 애오욕 등 감정이나 의지, 결심 등등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사용 범주가 아주 큰 추상적인 말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실제로, 지금 내 마음은 슬퍼요, 내 마음은 나도 모르겠어, 마음 먹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내 마음에는 늘 그가 있어, 너의 마음이 가는 대로 해라, 내 마음은 호수요.. 등 여러 용례가 있던데, 그 용례들의 문맥에서 의미가 감정, 결단, 지향 등 여러가지로 쓰이고 있고요. 그래서 선생님이 탐색 후 도달한 결론에 상당히 수긍을 했습니다. 세상에 님향한 일편단심처럼, 처음 다진 마음 처음처럼 끝까지 지켜가려는 생각이 있어 그것이 멋져 보이기도 하고, 사람은 동물이니 이곳 저곳 옮겨 다니며 이런 것 저런 것 등 다양힌 것들을 보고 느끼며 성장하는 것이니, 누구나 세계관 인생관이 바뀌는 법이니 그렇게 마음도 성장하여 바뀌어 가는 것도 멋진 일인 듯도 하고요. 그러니까 열다섯 전후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그 어린 나이에 사랑에 목숨을 거는 일이 어리었기에 가능했던 것 아닌가라는 비평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지요. 첫사랑이 주는 마음의 강도는 그만큼 클테니까요. 만약에 그들이 사랑했던 나이가 중년이었더라면 그렇게 목숨을 건 사랑에 빠졌을까라는 상상도 살짝 했습니다. 내 안에 있지만 내 마음 나도 모르는 것이 마음이라지만, 오랜 인연 동안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사람에 대한 그리움 신뢰 등 감정의 근육질은 쉬 잊힐리는 없겠다는 생각이드네요. 나이를 먹다 보니 소소한 것들 다 잊혀져 가는 중에도 몇은 기억의 저편 깊은 존재의 내면에서 꺼지지 않고 깜빡감빡 빛발하고 있어 나의 정체가 되어 있는 것을 것을 보면. 선생님이 노래하고픈 시적 대상이 넓어 참 좋습니다. 이 시를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한편의 작품을 읽은 듯 합니다.
울림님께서 남겨주신 글을 여러 번 천천히 읽었습니다. 제 시를 읽어주신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다시 ‘마음’이라는 주제를 함께 사유해 주셨다는 느낌을 받아 오래 여운이 남았습니다.
‘마음은 내 몸 안에 있지만 완전히 내 소유는 아니다’라는 제 나름의 도착점에 공감해 주신 것도 큰 힘이 되었고, 표준국어대사전의 의미와 다양한 용례를 통해 마음이라는 단어를 다시 풀어주신 부분에서는 저 역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사람은 살아가며 세계관과 인생관이 변하고, 그에 따라 마음도 함께 성장하고 바뀐다는 말씀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변하지 않는 마음이 아름다운 순간도 있지만, 변화하며 더 넓어지는 마음 또한 삶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일지 모르겠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 대한 비유도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같은 사랑이라도 나이와 시간, 삶의 무게에 따라 전혀 다른 결을 갖게 된다는 말씀에서, 마음이란 결국 시간을 품은 존재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마지막에 적어주신 ‘기억의 저편 깊은 존재의 내면에서 꺼지지 않고 빛나는 것들이 나의 정체가 된다’는 표현은 오히려 제가 시를 통해 쓰고 싶었던 문장을 선물받은 기분이었습니다.
이처럼 깊은 시선으로 읽어주시고, 또 새로운 생각을 보태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제 글도 독자와 만나 또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느꼈습니다. 앞으로도 함께 사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글을 꾸준히 써보겠습니다. 늘 따뜻한 울림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