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가에 조용히 앉는다.
억새 사이를 비집고 낚싯대를 툭 펴본다.
들판엔 새싹이 자라고,
멀리 펼쳐진 풍경은 꼭 유화 그림 같다.
하늘은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듯,
호수는 그걸 그대로 받아 안는다.
구름은 양떼 같고,
오리떼도 유유히 떠다닌다.
혹시 저 구름 속에 물고기라도 숨어 있나?
혼자 피식 웃으며 상상해본다.
나는 찌 하나를 호수와 하늘이 맞닿은 곳에 살짝 띄운다.
찌를 중심으로
하늘도 흐르고, 호수도 흐른다.
실잠자리 한 마리,
찌 위에 조심스레 내려앉는다.
모든 게 잠시 멈춘 듯 고요하다.
그러다
〈툭!〉
찌가 흔들린다.
줄이 팽팽해지고, 고요가 찢어진다.
펄떡!
은빛 물고기 하나가 물 위로 솟구친다.
낚시란,
그 한순간을 기다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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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한 계책은 천문을 꿰뚫었고
기묘한 계획은 지리를 통달하여
싸움마다 이겨 공 이미 높으니
족한 줄 알고 그만 둠이 어떠리
ㅡ을지문덕, ‘여수장 우중문 시’
선생님의 시를 읽으면서 떠 오른 시입니다.
하늘은 높고 땅은 평평하여 호수는 그윽히 맑고 잔잔한데 사람은 호숫가에서 고기를 낚고 있는데, 하늘과 땅 그리고 물은 스스로 고요해지려 하나 사람은 그 고요 속에서 잠자리마저도 활용하여 고기를 낚을 계책을 헤아리는 모습이, 인용 시의 천문과 지리를 헤아리면서 적을 잡을 계책을 세우는 모습과 닮아서일 듯합니다. 사람이 사는 일이란 언제나 머리 위에는 하늘을 있고, 발은 굳건히 평평한 땅을 딛고 있으면서 의연한 척, 한가로운 척 속내를 숨기고 있지만 한편으로 속내는 늘 먹이를 낚을 순간만을 조마조마 기다려야 하는 거지요. 기회를 잡는 자 고기를 얻을 것이요. 그렇지 못한 자 허기를 얻는 거지요. 그것을 확장하여 보면 국가와 국가 사이도 같을 거구요. 약육강식의 이기와 탐욕의 세계사적 세태에서, 국가나 사회의 행복 없이 개인의 행복을 담보할 수 없음을 절실히 체험하고 있는 지금 그래도 상대적으로 건강한 사회 구성원들이 많고 그들의 집단 지성이 사회를 이끌어 가는, 건강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끼는 요즈음입니다.
‘울림’님의 귀한 감상과 깊이 있는 인용에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을지문덕 장군의 ‘여수장 우중문 시’를 통해 제 시 속의 작은 찌 하나가 천문과 지리를 살피는 계책으로 확장되는 지점에서 무릎을 탁 쳤습니다. 그저 물가에 앉아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긴 ‘무위(無位)’의 시간이라 생각했는데, 그 이면에는 팽팽한 줄을 쥐고 기회를 기다리는 인간의 근원적인 생존 본능과 ‘조마조마함’이 숨어 있었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개인의 삶이나 국가의 운명이나,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그 속내에는 늘 ‘은빛 물고기’라는 기회를 낚기 위한 치열함이 공존하는 법이지요. 노자가 말한 ‘상선약수(上善若水)’의 마음으로 물처럼 흐르려 노력하지만, 때로는 팽팽해진 낚싯줄처럼 긴장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네 숙명인가 봅니다.
요즘처럼 전쟁과 갈등으로 시끄러운 시대에, 그래도 우리 사회의 집단지성이 건강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함께 나누어 주시니 마음이 든든합니다. 저의 소박한 낚시 풍경에서 국가와 사회의 행복까지 읽어내 주신 ‘울림’님의 현명한 통찰 덕분에 제 시가 비로소 완성된 기분입니다.
귀한 걸음과 울림 있는 글, 마음 깊이 간직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