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 무렵, 나는 천천히 가을로 걸어간다 | 노년의 삶과 풀벌레 소리

 

새벽, 아파트 공동 현관의 무거운 유리문을 밀어 연다.

서늘한 공기가 몸 안으로 들어온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눅눅한 더위가 등에 달라붙었는데, 오늘은 바람 끝이 다르다.

처서가 가까워지고 있다.

계절은 달력보다 먼저 바람으로 온다.

단지 안은 아직 어둡다. 가로등 아래 아스팔트만 희미하게 빛난다. 풀숲에서는 벌레들이 울고 있다.

찌르르, 찌르르.

나는 천천히 걷는다.

예전 같으면 이런 소리를 들었을까.

젊은 날의 나는 늘 목적지부터 바라보았다. 아침이면 손때 묻은 가방을 들고 만원 버스에 올랐다. 한 손으로 손잡이를 붙들고 사람들 사이에서 몸을 버텼다.

창문에는 피곤한 내 얼굴이 비쳤지만 오래 바라볼 여유조차 없었다.

뒤처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무엇인가 이루면 불안이 사라질 줄 알았다. 하나를 이루면 곧 다음 것을 찾았다.

삶은 늘 앞에 있다고 믿었다.

오늘은 내일을 위해 견디는 날이었고, 내일이 오면 또 다른 내일을 기다렸다.

돌아보면 젊은 날의 나는 한여름 매미와 닮았다.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느라 정작 살아 있는 순간을 자주 놓쳤다.

시간이 흘러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어느 저녁, 식탁에 앉아 있는데 아내가 반찬을 아이 앞으로 밀어주고 있었다. 아이는 밥알을 입가에 묻힌 채 웃었다.

아주 평범한 저녁이었다.

그런데 문득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서두르고 있는가.

지키고 싶었던 사람들이 눈앞에 있는데, 나는 왜 늘 내일만 바라보고 있는가.

그날 이후 삶이 갑자기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음 날이면 다시 출근했고 다시 바빴다.

다만 그날 저녁의 얼굴들이 마음 한구석에 오래 남았다.

세월이 흐른 뒤에야 알았다.

인생에서 오래 남는 것은 거창한 사건만이 아니었다.

누군가 내 앞으로 밀어주던 반찬 접시.

밥알을 묻히고 웃던 아이의 얼굴.

늦은 밤 나를 기다리던 작은 불빛.

그런 것들이었다.

그래서 요즘은 작은 것을 오래 바라보려고 한다.

처서 무렵 새벽의 풀벌레 소리도 그중 하나다.

찌르르, 찌르르.

걸음을 멈춘다.

풀벌레는 자신에게 주어진 계절을 지나고 있다. 울 수 있을 때 울고, 멎어야 할 때 멎는다.

젊은 날에는 얻는 것이 성장이라고 생각했다.

더 가져야 했고, 더 올라가야 했고, 더 인정받아야 했다.

이제는 안다.

덜어내는 것도 성장이다.

남의 시선을 조금 덜어내고, 세상의 평가를 조금 덜어내고, 아직 오지 않은 날에 대한 걱정을 조금 덜어낸다.

그렇게 비워낸 자리에는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들어온다.

새벽의 바람.

가족의 오래된 얼굴.

지나간 사람의 말 한마디.

그리고 풀벌레 소리.

노년은 무언가를 잃기만 하는 시간이 아니었다.

젊어서 너무 빨리 지나치느라 보지 못했던 것을 다시 바라보는 시간이었다.

예전에는 빨리 걷는 사람이 잘 사는 사람인 줄 알았다.

지금은 걸음을 늦출 수 있는 사람이 자기 삶을 더 오래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이제 큰 것을 바라지 않는다.

아침이면 책상 앞에 앉아 펜을 들 수 있으면 좋겠다. 살아오며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과 그들에게 받았던 온기를 몇 줄의 글로 남길 수 있으면 좋겠다.

삶은 대단해서 기록할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한 번뿐이어서 기록할 가치가 있다.

처서가 가까운 새벽, 나는 다시 걷는다.

여름은 아직 완전히 떠나지 않았다. 가을도 아직 문밖에 서 있을 뿐이다.

하지만 바람은 먼저 알고 있다.

떠날 때가 있다는 것을.

나이가 든다는 것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

더 움켜쥐기보다 놓아야 하는 때.

앞만 보기보다 곁을 바라보아야 하는 때.

말하기보다 오래 들어야 하는 때.

노년은 삶의 끝을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 지나온 삶을 천천히 읽어가는 시간이다.

문득 오래전 만원 버스 창문에 비쳤던 젊은 내가 떠오른다.

어디까지 가야 안심할 수 있는지 몰라 계속 서두르던 사람.

그에게 한마디를 건넬 수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너무 빨리 지나가지 말라고.

네가 찾아 헤매는 삶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고.

저녁 식탁에서 웃는 가족에게도 있고, 아무도 깨어 있지 않은 새벽 풀숲의 작은 울음에도 있다고.

그 말을 가장 늦게 알아들은 사람이 바로 나다.

다시 풀벌레가 운다.

찌르르, 찌르르.

가을은 여름을 지우며 오는 계절이 아니다.

뜨거웠던 여름을 품은 채 서늘해지는 계절이다.

노년도 청춘을 지우는 시간이 아닐 것이다.

서툴렀던 청춘과 버거웠던 장년을 품은 채 그날들의 의미를 천천히 알아가는 시간이다.

멀리서 새벽빛이 번지고, 아파트 창 하나에 불이 들어온다.

나도 곧 집으로 돌아가 오늘 새벽을 적을 것이다.

바람이 먼저 가을을 알고 있었다고.

풀벌레는 어둠 속에서 제 몫의 계절을 울고 있었다고.

그리고 한 사람은 그 소리를 들으며 뒤늦게 알았다고.

삶은 얼마나 멀리 갔는가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오래 바라보았는가로도 남는다는 것을.

나는 다시 한 발을 내딛는다.

찌르르, 찌르르.

이번에는 그 작은 울음을 밟지 않으려고 조금 비켜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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