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서비스가 배달한 신뢰|무너진 삶을 다시 일으킨 오토바이

도심 도로를 달리는 중년 퀵서비스 기사

다섯 평 남짓한 반지하방에서 몇 달을 버텼다.

햇볕은 창턱까지만 왔다가 돌아갔다. 세상도 그랬다. 사업이 무너지자 사람들의 전화는 짧아졌고, 끝내 오지 않았다. 마흔을 넘긴 내게 남은 것은 신용불량자라는 이름과 낡은 오토바이 한 대뿐이었다.

“나는 끝났구나.”

그 생각이 목구멍까지 차오른 밤, 방 안에 계속 앉아 있으면 정말 끝날 것 같았다. 마지막 재산인 오토바이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엔진 소리가 반지하의 눅눅한 침묵을 깨뜨렸다.

희망은 거창한 문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고장 나기 직전의 시동음처럼 작고 불안하게 찾아왔다. 무너짐 속에서도 겨자씨만큼 남아 있던 희망이 나를 거리로 밀어냈다.

그날이 내 첫 퀵서비스 일이었다.

처음 맡은 물건은 아이가 기다리는 생일 케이크였다. 박스가 기울까 봐 몸을 세우고 달렸다. 과속방지턱 앞에서는 숨까지 줄였다. 내가 늦으면 촛불을 켜지 못한 아이의 시간이 함께 늦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날은 응급실로 약을 날랐다. 어떤 날은 지방에서 올라온 고인의 유품을 가족에게 전했다. 봉투 하나, 작은 상자 하나에도 저마다의 사정이 들어 있었다. 사랑도 있었고, 미안함도 있었고, 마지막 인사도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물건만 옮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끊어질 뻔한 약속을 이어 주고 있었다.

신뢰는 거창한 맹세보다 작은 태도에서 생긴다. 시간을 지키고, 물건을 함부로 다루지 않고, 초인종을 누르기 전에 흐트러진 포장을 한 번 더 살피는 일. 사람의 인품을 보여주는 작은 태도란 어쩌면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지키는 약속일 것이다.

빗속을 달리면 장갑 안까지 물이 찼다. 겨울에는 배달을 마치고서야 손끝이 얼었다는 것을 알았다. 여름 아스팔트는 밑에서 불을 뿜었다. 그래도 누군가 “기사님,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면 하루의 고단함이 조금 가벼워졌다.

누군가를 향해 달릴 이유가 있다는 것. 그것은 죽은 줄 알았던 마음이 다시 뛰고 있다는 증거였다.

인생은 목적지에 도착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다. 넘어져도 다시 시동을 걸고, 주소를 확인하고, 다음 골목으로 들어서는 사람의 것이기도 하다. 길을 잃지 않는 삶은 없다. 다만 길이 보이지 않을 때도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조금씩 배울 뿐이다.

사람들은 이제 말한다.

“그 기사님이라면 믿고 맡겨요.”

그 한마디가 나를 다시 사람들 속에 세운다. 신용불량이라는 이름보다 믿을 만한 기사라는 이름이 앞서기 시작했다. 통장의 숫자는 아직 넉넉하지 않지만, 내 삶에는 다시 주소가 생겼다.

오늘도 포장지에는 내 이름이 적히지 않는다. 그래도 그 안에는 나의 시간이 들어 있다. 빗물과 땀, 약속을 지키려는 마음이 함께 실려 간다.

나는 물건을 배달한다.

그러나 어쩌면 매일 조금씩, 잃어버렸던 나 자신도 내 삶으로 배달하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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