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 산책, 내가 사랑하기 쉬운 얼굴

오후의 햇살이 거실 깊숙이 들어오면 녀석은 그 안에 몸을 눕힌다. 숨을 쉴 때마다 배가 천천히 오르내린다. 내가 들어서도 귀만 쫑긋한다. 꼬리로 바닥을 두어 번 툭툭 친다. 반갑기는 한데 일어날 정도는 아닌 모양이다.
가구를 긁지도 않고 괜한 소리도 내지 않는다. 집에서는 나보다 점잖은 식구다.
그러나 반려견과 산책을 나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모퉁이 너머 다른 개가 보이는 순간, 녀석의 걸음이 멎는다. 등이 굳고 목덜미의 털이 곤두선다. 곧 굵은 짖음이 터진다. 이름을 불러도 돌아보지 않는다. 앞으로 튀어 나가는 몸을 붙들 때마다 줄이 손바닥을 파고든다.
“죄송합니다. 애가 겁이 많아서요.”
고개를 숙이며 길을 비킨다. 상대가 멀어지고 나면 녀석에게는 다른 말이 나간다.
“너는 왜 밖에만 나오면 그러니.”
남에게는 겁이 많다고 설명하면서, 정작 녀석에게는 겁내지 말라고 다그친 셈이다.
달래도 보고 꾸짖어도 보았다. 집에서는 그토록 순한 반려견이 산책길에서는 왜 달라지는지 답답했다. 나중에는 내가 먼저 주위를 살폈다. 저만치 개가 보이면 방향을 틀고, 좁은 길에서는 목줄부터 짧게 쥐었다.
녀석은 태평하게 땅 냄새를 맡고 있는데 나 혼자 벌써 한바탕 소동을 치른 날도 있었다. 산책하러 나와서는 돌아갈 궁리부터 했다. 짖지 않고 집에 도착하면 오늘도 무사히 일을 마쳤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맞은편 개가 멀어졌는데도 녀석은 제자리에 서 있었다. 조금 전까지 몸을 솟구치던 기세는 사라지고 가쁜 숨만 이어졌다. 목덜미의 털이 가라앉는 동안에도 상대가 사라진 쪽을 보고 있었다.
나는 줄을 당기려다 멈췄다.
상대를 쫓아내고 의기양양한 줄 알았는데, 그날은 몹시 지쳐 보였다. 이긴 것일까. 가까스로 견딘 것일까.
알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짖음이 그친 뒤의 녀석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소란이 끝나면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났다. 녀석의 숨이 돌아오기도 전에 내 민망함부터 수습했다.
“겁이 많아서요.”
입에 익은 말이었다. 그런데 나는 녀석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몰랐다. 정말 두려워서 짖는지조차 확실히 알지 못했다. 그 말로 남의 양해는 구했으면서, 녀석의 사정은 충분히 들여다보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손바닥이 얼얼했다. 줄을 고쳐 쥐자 녀석이 잠깐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사실 나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반려견을 원했다. 다른 개와 마주쳐도 조용히 지나가고, 낯선 사람에게도 순하게 꼬리를 흔드는 개. 누군가 “참 순하네요”라고 말하면 어깨가 조금 펴졌다.
녀석을 칭찬하는 말인데 내가 잘 키웠다는 말로 들었다.
짖을 때는 반대였다. 사람들이 개를 보고 있는데도 나를 나무라는 것 같았다. 녀석이 조용해지기만 하면 내 난처함도 끝날 터였다.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자꾸 높아진 데에는 그런 조급함도 섞여 있었다.
그날 이후로 녀석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다른 개가 나타나면 여전히 몸을 굳혔다. 나 역시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다만 곧장 이름을 부르며 줄을 당기기 전에, 물러설 곳부터 살폈다.
며칠 뒤 산책길에서 다시 다른 개를 만났다. 녀석의 시선이 한곳에 멎었다. 나는 거리를 두고 길 가장자리로 비켜섰다.
“괜찮아.”
녀석은 짖었다. 내 말 한마디에 평온해지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몇 번이나 앞으로 몸을 던졌고, 나는 줄을 단단히 붙들었다. 지나가는 이에게 고개를 숙이는 일도 여전했다.
녀석은 여전히 짖었고, 나는 여전히 난감했다.
상대가 멀어지자 녀석은 한동안 그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곁에 서 있었다. 줄을 쥔 손은 놓지 않은 채, 다음 말을 서두르지 않았다.
얼마 뒤 녀석이 고개를 낮췄다. 길가 풀잎에 코를 대고 한참 냄새를 맡았다. 조금 전의 소동이 무색하게도 아주 꼼꼼했다. 대체 거기 무슨 소식이 있기에.
평소 같으면 그만 가자며 줄을 당겼을 것이다. 그날은 녀석이 먼저 고개를 들 때까지 기다렸다.
집에 돌아와 발을 닦아주었다. 녀석은 앞발 하나를 내 손에 맡긴 채 딴 곳을 보았다. 조금 전 그토록 요란했던 몸이 내 무릎 앞에서는 순순했다.
수건으로 발가락 사이를 닦다가 녀석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표정이었다. 밖에서도 이 얼굴로 있어 주면 얼마나 좋을까. 여전히 그런 마음이 들었다.
발을 다 닦기도 전에 녀석이 방석으로 가려 했다. 뒷발 하나가 아직 젖어 있었다. 다시 불러 앉히자 작은 한숨을 쉬었다. 나는 웃으며 남은 발을 닦았다.
거실의 햇살은 아까보다 짧아져 있었다. 녀석은 방석에 몸을 눕혔다. 정수리를 쓰다듬자 짧은 털이 손바닥에 까슬하게 닿았다. 곧 눈이 감기고 배가 천천히 오르내렸다.
현관에는 산책줄이 걸려 있었다. 내일도 녀석은 짖을지 모른다. 나도 또 목소리를 높일지 모른다.
나는 녀석의 머리에서 손을 거두었다. 잠든 몸 곁으로 햇살이 조금씩 옮겨갔다. 밖에서는 미처 기다려주지 못했던 숨이, 여기서는 이토록 느리게 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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