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후가 되면 소래산 자락을 걷는다.
높지 않은 산이다. 길도 험하지 않다. 오래 걸어야 정상에 닿는 산도 아니다. 그래서인지 나는 마음이 복잡한 날이면 소래산 오솔길을 찾는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걷기 위해 간다.
마른 흙을 밟으면 사각거리는 소리가 난다. 나무뿌리가 드러난 곳에서는 걸음이 저절로 느려진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흩어진다. 밝았던 길이 금세 그늘에 잠기고, 몇 걸음 지나면 다시 환해진다.
그날도 천천히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등 뒤에서 운동화가 흙을 차는 소리가 들렸다. 젊은 남자 하나가 빠른 걸음으로 나를 지나쳤다. 숨이 거칠었지만 발걸음에는 힘이 있었다. 그는 잠시 뒤 굽은 길 너머로 사라졌다.
조금 더 올라가자 이번에는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보였다.
노인은 한 걸음을 내딛고 잠시 숨을 골랐다. 다시 한 걸음을 옮겼다. 지팡이 끝이 흙을 누를 때마다 작은 자국이 남았다. 나는 옆으로 비켜 길을 내주었다.
노인이 고개를 들어 나를 보고 웃었다.
“먼저 가세요.”
나는 괜찮다고 말하고 뒤에서 천천히 걸었다.
조금 전 나를 앞질러 간 젊은이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노인의 걸음은 여전히 느렸다. 그리고 나는 그 둘 사이에서 내 속도로 걷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 장면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예전의 나는 누군가 앞서가면 마음이 급해지는 사람이었다. 비슷한 나이에 더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을 보면 내가 뒤처진 것 같았다. 누군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도 오래 품었다. 잘 지내느냐는 평범한 질문 앞에서도 잘 지내는 사람처럼 웃어야 마음이 놓였다.
괜찮지 않은 날에도 괜찮은 얼굴을 했다.
힘든 일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 습관도 그때 생겼다. 설명하면 초라해질 것 같았고, 이해받지 못하면 더 아플 것 같았다. 그래서 말하지 않았다. 오래 지나면 잊힐 줄 알았다.
그러나 말하지 않은 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기억은 몸보다 오래 남았다. 아무 일 없는 하루를 보내다가도 낯익은 말 한마디에 마음이 내려앉았다. 오래된 장면이 문득 떠오르는 밤이면 잠든 집 안에서 혼자 깨어 있기도 했다.
나는 그것을 마음의 흉터라고 부르게 되었다.
흉터는 상처가 사라졌다는 표시가 아니었다. 상처를 지나왔다는 흔적이었다. 아프지 않은 날에도 남아 있고, 때로는 잊고 살다가도 문득 존재를 드러냈다.
오랫동안 나는 그 흔적을 부끄러워했다.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으면 없는 것이 될 줄 알았다. 그래서 단정한 얼굴을 하고, 별일 없는 사람처럼 살았다. 남들이 정해 놓은 삶의 속도에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자꾸 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사람의 삶에는 같은 속도가 없었다.
소래산 오솔길에서 만난 젊은이는 빠르게 걸었다. 노인은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걸었다. 누구의 걸음도 잘못되지 않았다. 그저 각자의 몸이 허락하는 속도로 같은 산을 오르고 있을 뿐이었다.
삶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한달음에 지나가는 길을 누군가는 오래 걸어 통과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쉽게 잊히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평생의 마음의 흉터가 되기도 한다. 상처의 깊이를 다른 사람의 눈으로 재는 일은 그래서 조심스럽다.
겉으로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는 더욱 그렇다.
웃고 있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고 해서 모든 기억이 아문 것도 아니다. 우리는 서로의 마음속에 무엇이 남아 있는지 다 알지 못한다.
그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 나는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조금 덜 가혹해지려 한다.
걷다 보면 돌부리에 발이 걸리는 날이 있다. 잠시 멈추면 된다. 숨이 차면 나무 아래 서 있어도 된다. 누군가 먼저 지나간다고 해서 따라 뛰어갈 이유는 없다.
산은 먼저 도착한 사람에게 더 많은 햇살을 주지 않는다.
그 생각을 하며 걷는데 앞서가던 노인이 잠시 멈춰 서 있었다. 길 한쪽의 나무에 기대어 물을 마시고 있었다. 나는 그 곁을 지나쳤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가게 되었다.
몇 걸음 걷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노인은 물병 뚜껑을 닫고 다시 지팡이를 짚었다. 천천히 한 걸음을 내디뎠다.
흙 위에 또 하나의 자국이 남았다.
그 순간 나는 오래전의 나를 떠올렸다. 남보다 늦으면 실패한 것 같았고, 남과 다르면 잘못된 것 같았던 사람. 타인의 시선에 맞춰 내 삶의 속도를 바꾸느라 정작 내가 얼마나 지쳐 있는지는 묻지 않았던 사람.
그때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생겼다.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그 말은 위로라기보다 뒤늦게 배운 삶의 방식에 가까웠다.
행복도 어쩌면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침에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을 잠시 바라보는 일. 따뜻한 차 한 잔을 천천히 마시는 일.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는 일. 누군가의 하루가 무사하기를 마음속으로 빌어주는 일.
예전에는 그런 것들이 너무 작아서 행복이라고 부르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다르다.
삶을 견디게 하는 것은 대개 작은 것들이었다.
마음의 흉터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갑자기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작은 평온이 하루씩 그 위에 쌓였다. 잘 먹고, 잘 자고, 걷고, 사랑하고, 때로는 울면서 오래된 상처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했다.
상처가 있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그 상처 때문에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일이었다.
소래산을 내려오는 길에는 햇살이 길게 기울어 있었다.
바람이 불자 나뭇가지가 흔들렸다. 조금 전까지 그늘이었던 곳으로 햇살이 들어왔다. 반대로 밝았던 자리는 나뭇잎에 가려 어두워졌다.
나는 그 길을 천천히 내려왔다.
앞서가는 사람을 따라잡으려 하지 않았고, 뒤에 오는 사람을 확인하지도 않았다.
마른 흙 위에는 수많은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큰 발자국도 있었고 작은 발자국도 있었다. 깊게 팬 자국 옆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 희미한 자국도 있었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온 발자국들이 한동안 같은 길을 따라 이어지고 있었다.
내 발자국도 그 사이에 하나씩 남았다.
바람이 다시 불었다.
나뭇잎이 흔들리고, 발밑의 그늘도 함께 흔들렸다.
나는 그 움직이는 그늘을 밟으며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늘 사이로 들어온 한 조각 햇살이 내 신발 끝에 오래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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