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닿지 않는 곳에도 꽃은 핀다|곰팡이와 상처를 그린 현대시

벽의 안쪽

 

빛은
마른 벽만 훑고 지나갔다.

창가에는 먼지가 반짝였고
방 안쪽 벽지는
물먹은 살갗처럼 부풀어 있었다.

손톱으로 누르면
축축한 자국이 남았다.

그 아래에서
희끗한 점 하나가 돋았다.

꽃이라기에는
냄새가 먼저 왔다.

젖은 종이와
오래 닫힌 방의 냄새.

점은 테두리를 만들고
테두리는 밤마다 넓어졌다.

누군가는 얼룩이라 불렀다.

마른 걸레가 지나가고
독한 약 냄새가 지나가고
한동안 벽은 깨끗해졌다.

그러나 비가 오면
같은 자리에서
흰 가루가 다시 돋았다.

지워진 것이 아니라
안쪽으로 물러나 있었던 것이다.

벽지를 들추자
검게 물러진 벽이 나왔다.

그제야 알았다.

흰 것은
상처를 가린 것이 아니라
상처가 있다는 것을
끝내 드러내고 있었다.

손끝에 묻은 포자를 털어냈다.

몇 알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몇 알은 보이지 않았다.

창문을 열자
빛이 늦게 들어왔다.

벽의 가장 깊은 얼룩까지
빛은 닿지 못했다.

그곳에는 아직
희고 작은 것들이 붙어 있었다.

썩은 곳을 먹으며
함께 썩어가는 것들.

누구도 꽃이라 부르지 않았지만

나는 한참 동안
그 벽을 덮지 못했다.

밤이 지나고
다시 아침이 왔다.

빛은 여전히
마른 곳부터 환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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