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걸음치는 사람

식당 문을 열자 그녀가 먼저 나를 발견했다.
창가에 앉아 있던 그녀가 손을 들었다. 나는 마주 손을 흔들며 걸어갔다.
“늦었네.”
그녀는 웃으며 말했지만 목소리 끝에 조금 서운한 기색이 묻어 있었다.
나는 교통이 막혔다고 말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조금 일찍 나왔더라면 늦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이런 걸 그냥 넘기지 않는 사람이었다. 약속 시간을 중요하게 여겼고, 내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일을 오래 기억했다. 가끔은 말을 너무 빨리 했고, 내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자신의 생각을 보태곤 했다.
그런 모습이 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 뒤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마음을 열면 나는 그 사람의 단점을 발견했다. 말투가 거슬리고, 취향이 맞지 않고, 생각하는 방식이 답답해졌다.
반대로 멀어지는 사람에게는 관대했다.
답장이 늦으면 바쁜가 보다 생각했고, 무심한 말에는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을 것이라 짐작했다. 나를 만나려 하지 않는 사람에게조차 이유를 만들어주었다.
다가오는 사람에게는 현실을 들이댔고, 멀어지는 사람에게는 상상을 보태주었다.
그러니 언제나 멀어지는 사람이 더 아름다울 수밖에 없었다.
한때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쉽게 가질 수 없는 사람에게 끌리는 마음. 손에 닿을 듯하다가 다시 멀어지는 사람을 오래 생각하는 마음. 그런 것이 깊은 사랑의 증거인 줄 알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사랑을 좇은 것이 아니라 사랑이 시작되지 않을 곳을 골라 다녔는지도 모른다.
닿지 않는 사람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함께 밥을 먹을 일도 없고, 약속 시간을 두고 다툴 일도 없다. 피곤한 얼굴을 볼 일도 없으며, 서로 다른 생활 습관 때문에 마음이 상할 일도 없다.
무엇보다 내가 틀렸다는 말을 들을 일이 없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 오래 걸렸다.
나는 사랑에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라, 어쩌면 내가 옳은 채로 남고 싶은 사람이었다.
사랑은 상대를 받아들이는 일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나는 나를 바꿀 생각이 없었다. 내가 서 있는 자리는 그대로 둔 채 누군가 정확히 그 자리에 들어맞기를 기다렸다.
그런 사람은 오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은 퍼즐 조각이 아니니까.
그녀가 메뉴판을 내 쪽으로 밀었다.
“또 그거 먹으려고?”
내가 늘 주문하는 음식을 가리키자 그녀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게 어때서.”
“여기까지 와서 맨날 똑같은 것만 먹잖아.”
“좋아하니까 먹는 거지.”
그녀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예전의 나라면 이런 사소한 차이를 마음속에 적어두었을 것이다.
취향이 다르다.
말하는 방식이 다르다.
나와 맞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문장들을 하나씩 모아 떠날 이유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사람을 떠나기 전에 먼저 판결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 사람이 정말 나와 맞지 않았던 것인지, 내가 맞춰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관계가 어려워지기 전에 결론을 내리면 상처받을 일도 줄어들었다.
대신 아무도 오래 남지 않았다.
창밖으로 사람들이 지나갔다.
우산을 들고 가는 사람, 휴대전화를 보며 걷는 사람, 아이의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이 보였다.
그들을 바라보다 문득 예전에 좋아했던 한 여자가 떠올랐다.
그녀가 나를 떠난 뒤 나는 오랫동안 그녀를 완벽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좋았던 말만 남았고, 웃던 얼굴만 남았다. 함께 있을 때 불편했던 순간들은 이상할 만큼 희미해졌다.
기억 속 사람은 늙지도 않았고 변덕을 부리지도 않았다.
나에게 실망하지도 않았다.
내가 그녀에게 실망할 기회도 없었다.
그제야 알았다.
멀어지는 사람이 완벽해 보이는 것은, 때로 그 사람이 완벽해서가 아니다.
더는 가까이에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거리가 사람의 흠을 지우고, 그 빈자리를 상상이 채운다.
나는 오랫동안 그 상상을 사랑이라고 불렀다.
그녀가 찻잔을 들었다가 나를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봐?”
“그냥.”
“또 혼자 무슨 생각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내 대답을 기다리다가 먼저 차를 마셨다. 그리고 조금 뜨겁다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 모습이 우스워서 웃음이 났다.
그녀도 따라 웃었다.
완벽하지 않았다.
나도 그랬다.
어쩌면 관계란 완벽한 사람을 만나는 일이 아니라, 완벽하지 않은 한 사람을 가까이에서 오래 바라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가까이 가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좋은 것만 보이는 것이 아니다.
고집도 보이고, 서운함도 보이고, 서로 다른 습관도 보인다.
그것을 본 뒤에도 그 사람 앞에 다시 앉을 수 있는가.
사랑은 어쩌면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 모른다.
식사가 끝날 무렵 그녀가 말했다.
“커피 마시고 갈래?”
습관처럼 시간을 확인했다.
집에 가야 할 이유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다.
피곤했고, 할 일도 있었다. 무엇보다 오래 앉아 있으면 우리는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서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더 많이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는 늘 그 지점에서 뒷걸음쳤다.
그런데 그날은 휴대전화를 뒤집어 테이블 위에 놓았다.
“그래.”
그녀가 직원을 불러 커피 두 잔을 주문했다.
잠시 후 그녀는 또 내 말을 끊었다. 나는 인상을 찌푸렸고, 그녀는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나는 처음으로 그냥 말해보았다.
“내 이야기 아직 안 끝났어.”
그녀가 잠깐 멈췄다.
“미안. 계속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떠나지 않았고 나도 일어서지 않았다.
나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날 나는 사랑에 대해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았다.
다만 한 사람의 단점을 발견한 뒤에도 그 사람 앞에 조금 더 앉아 있었다.
내게는 그것이면 충분했다.
평생 뒷걸음치던 사람이 처음으로 앞으로 나아간 순간은, 어쩌면 한 걸음조차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도망치지 않은 한 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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