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의 위로|봄이 오기 전 숲에서 배운 쉼

봄이 오기 전 숲에서 캠핑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순간

봄이 오기 전 숲에서 커피 한 잔을 들었다. 하늘은 맑고 햇살은 따뜻했지만, 나무들은 아직 잎을 내놓지 않았다. 겨울은 물러날 채비를 하면서도 빈 가지 끝을 좀처럼 놓아주지 않았다.

나는 캠핑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곁에는 하얀 SUV와 작은 텐트가 있었고, 나무 테이블 위에는 도시락과 물 한 병, 종이컵 하나가 놓여 있었다. 대단할 것 없는 풍경이었다. 그런데 도시를 벗어나니 평범한 것들이 제 얼굴을 되찾았다.

커피에서는 옅은 김이 올랐다. 손바닥에 전해지는 온기가 마음의 속도를 늦췄다. 우리는 멀리 떠나야만 일상에서 벗어나는 줄 안다. 그러나 작고 소심한 일탈이 하루를 바꾸는 순간은 의외로 가까이에 있다. 의자 하나를 펴고 잠시 앉는 일도 충분한 출발이 된다.

이곳에는 시계도 알람도 업무 메신저도 없었다. 바람과 숲의 숨소리만 자리를 지켰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숲인데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위로는 좋은 말을 많이 해주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때로는 그냥 곁에 있다는 사실이 주는 위로가 말보다 오래 남는다.

바람이 불자 잎 없는 가지들이 가볍게 흔들렸다. 빈 나무는 초라하지 않았다. 비워졌기에 햇살이 더 깊이 통과했다. 숲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재촉하지 않았다.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오늘은 무언가를 이루지 않아도 충분해.”

자연이 실제로 그런 말을 했을 리 없다. 아마 오래 미뤄두었던 내 마음이 숲의 목소리를 빌렸을 것이다. 바쁘게 살 때는 쉬는 일에도 이유를 붙였다. 쉬어야 다시 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쉼은 노동을 위한 충전만이 아니다. 삶이 삶으로 남기 위해 필요한 여백이다.

커피 한 모금, 햇살 한 줄기, 말없이 흘러간 시간. 그 사이 나는 조금씩 나에게 돌아왔다. 비워 둔 시간은 낭비가 아니었다. 퇴직 뒤 비로소 알게 된 삶의 여백처럼, 채우지 않은 자리에 비로소 보이는 것도 있었다.

봄은 서둘러 오지 않았다. 나도 서둘러 일어나지 않았다. 식어가는 커피를 천천히 마시며 빈 가지 사이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날 나를 위로한 것은 거창한 조언이 아니었다.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숲이었다.

삶이 버거운 날에는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부터 묻는다. 그러나 가끔은 반대로 물어야 한다. 오늘 하루, 나는 무엇을 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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