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곳에서 하늘을 보았다|노자의 물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

낮은 곳에서 하늘을 보았다

 

비가 많이 오던 여름이었다.

오후 내내 내린 비가 그칠 무렵, 나는 우산을 접고 집 근처 하천을 걸었다. 물은 흙빛이었다. 나뭇가지와 풀잎 몇 장이 빠른 물살에 떠밀려 내려갔다.

그날 오전, 나는 기다리던 연락 하나를 받지 못했다.

며칠 동안 휴대전화를 곁에 두고 있었다. 화면이 켜질 때마다 확인했다. 전화가 아니면 문자라도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기다림에도 끝이 있다는 것을 그날 알았다.

나는 휴대전화를 주머니 깊숙이 넣고 물을 따라 걸었다.

하천의 물은 작은 보를 넘고 있었다. 물은 한 번도 높은 곳을 선택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낮은 틈이 있으면 그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돌을 만나면 돌아가고, 돌아갈 수 없으면 잠시 고였다.

그 모습에는 억울함이 없어 보였다.

나는 달랐다.

그동안 나는 내가 어느 높이에 있는지를 자주 확인하며 살았다. 누군가 앞서가면 마음이 급해졌고, 뒤처졌다고 생각하면 걸음을 재촉했다. 높은 곳으로 가는 것은 나아지는 것이고, 낮아지는 것은 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가장 먼저 상한 것은 자존심이었다. 실패 그 자체보다 내가 아래로 내려갔다는 느낌을 견디기 어려웠다.

그날도 그랬다.

오지 않은 연락보다 그것을 기다리고 있는 내 모습이 더 초라하게 느껴졌다.

하천 가장자리에는 작은 웅덩이가 하나 있었다. 본류에서 밀려난 물이었다. 흙탕물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한동안 그 앞에 서 있었다.

조금 전까지 흐리던 물이 가만히 있는 사이 조금씩 맑아지고 있었다. 흙은 아래로 가라앉았다.

살다 보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시간이 있다. 기다리는 시간도 그렇다. 실패한 뒤의 시간도 그렇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멈춰 있는 시간도 있다.

나는 그런 시간을 늘 낭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웅덩이의 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면서 제 안의 흙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사람에게도 그런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나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날은 어디로든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을 잠시 내려놓았다.

집으로 돌아와 오래전에 읽다 덮어 둔 『도덕경』을 꺼냈다. 물에 관한 대목에서 눈길이 멈췄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사람들이 꺼리는 낮은 곳에 머문다는 뜻의 문장이었다.

예전에는 그 말을 겸손에 관한 가르침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살아 보니 낮은 곳은 그렇게 아름답기만 한 곳이 아니었다.

실패는 실패였다.

떠난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고, 닫힌 문이 저절로 열리는 것도 아니었다. 오래 기다린다고 반드시 좋은 소식이 오는 것도 아니다. 견딘 시간만큼 삶이 무엇인가를 돌려준다는 보장도 없다.

그래서 나는 물처럼 낮아지면 언젠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식으로 그 말을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낮아짐이 상승을 위한 준비라면 결국 우리의 목적은 여전히 높은 곳에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물이 굳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까닭을 설명할 수 없었다.

물은 높은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낮아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저 제 앞에 놓인 기울기를 받아들이며 흐를 뿐이다.

그 생각에 이르자 낮은 곳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낮은 곳에 갔기 때문에 언젠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낮은 곳에서는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이 있었다. 돌 밑에 붙어 있는 이끼가 있었다. 말없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의 얼굴이 있었고, 쉽게 판단했던 타인의 침묵에도 저마다의 사정이 있었다.

높은 곳만 바라보며 걸을 때는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었다.

며칠 뒤 다시 하천에 갔다.

물이 많이 줄어 있었다. 물속에 잠겨 있던 돌들이 여기저기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둥근 돌 하나를 주워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오래 물에 씻긴 돌이었다. 모서리가 거의 없었다.

한참 들여다보다가 문득 어느 쪽이 어느 쪽을 바꾼 것인지 궁금해졌다.

물이 돌을 둥글게 만든 것일까.

아니면 돌 사이를 지나오는 동안 물의 길도 달라진 것일까.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사람도 지나온 일을 이겨 냈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이긴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떤 시간을 통과하면서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된다.

그 시간이 무엇을 주었는지는 오래 지나도 모를 수 있다. 무엇을 가져갔는지도 정확히 헤아리기 어렵다.

다만 모서리 하나쯤은 달라져 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돌을 다시 물속에 내려놓았다. 물은 잠시 돌 주위에서 흔들리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흘러갔다.

돌아오는 길에 며칠 전 보았던 웅덩이를 다시 만났다.

비가 그친 뒤 여러 날이 지나 물은 많이 줄어 있었다. 나는 젖은 곳을 피해 발을 옆으로 옮기다가 잠깐 멈췄다.

작은 물 위에 구름 한 점이 떠 있었다.

하늘을 보려고 고개를 든 것이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런데 하늘은 거기에 있었다.

가장 낮은 곳에.

그날 기다리던 연락은 끝내 오지 않았다. 휴대전화도 울리지 않았다.

나는 한동안 웅덩이 속 구름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불었다.

구름이 잠시 흐트러졌다.

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몇 걸음쯤 갔을 때 뒤를 돌아보았다.

물이 다시 고요해져 있었다.

구름은 아직 거기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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