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귀의 사랑

베란다 창문에 가을 햇살이 유난히 투명한 날이었다.
창틀 구석에 사마귀 한 마리가 붙어 있었다. 연두빛 몸과 낫처럼 접힌 앞다리, 이따금 방향을 바꾸는 작은 머리.
나는 한동안 그 사마귀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마귀의 기이한 번식 방식이 떠올랐다.
일부 사마귀는 짝짓기 도중이나 뒤에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는다. 인간의 눈에는 잔혹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 죽음에서 희생과 사랑을 읽어내곤 한다.
하지만 수컷은 죽기 위해 암컷에게 다가가는 것이 아니다.
그 역시 살아남으려 한다. 위험을 살피며 접근하고, 잡아먹히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나는 왜 그 작은 생명 앞에서 자꾸 ‘내어준다는 것’을 생각했을까.
생각은 오래전 교실로 흘러갔다.
젊은 날의 나는 거의 매일 칠판 앞에 서 있었다.
수업을 마치면 양복 소매와 손가락에 하얀 분필가루가 묻어 있었다. 종이 울리면 아이들이 복도로 쏟아져 나갔고, 나는 칠판을 지웠다.
그리고 다시 썼다.
아이들은 졸업했고 새로운 아이들이 그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가 갔다.
그때는 그것을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 청춘을 누군가에게 내어주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해야 할 일을 했고, 때로는 지쳤으며, 어떤 날에는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가 누구보다 반가웠다.
세월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되었다.
칠판의 글씨는 모두 지워졌지만 그 시간이 전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래전에 가르쳤던 제자가 연락해 온 적이 있다.
그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말 한마디를 기억하고 있었다. 힘들었던 시절, 그 말이 자신을 붙잡아주었다고 했다.
나는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전화를 끊은 뒤 한동안 손에 휴대전화를 쥔 채 앉아 있었다.
평생 지식을 가르쳤다고 생각했는데 한 사람에게 남은 것은 지식이 아니라 말 한마디였다.
그때 알았다.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남기는지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는 것을.
우리는 무언가를 남기며 산다.
누군가는 자식을 통해 생명을 이어가고, 누군가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든다. 누군가는 자신이 익힌 것을 다음 사람에게 가르치고, 누군가는 이름조차 남지 않을 친절을 건넨다.
핏줄만이 삶을 이어가는 것은 아니다.
내가 건넨 말이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살아남을 수도 있다. 내가 쓴 문장 하나가 알지 못하는 사람의 밤을 건너갈 수도 있다.
그것 역시 인간이 자신을 이어가는 한 방식일 것이다.
그러나 사랑을 반드시 희생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다.
젊었을 때 나는 많이 내어주는 사람이 좋은 부모이고 좋은 교사라고 생각했다. 더 많이 참고 더 많이 포기할수록 사랑도 깊어진다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사랑은 나를 없애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를 지키면서 누군가의 곁에 오래 머무는 것. 내 안에 있는 좋은 것을 조금씩 건네면서도 서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
그 또한 사랑이다.
나는 다시 창틀의 사마귀를 바라보았다.
사마귀는 희생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의 의미를 고민하지도 않을 것이다.
살려고 움직이는 작은 생명일 뿐이다.
그 사마귀에게 희생과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나였다.
아마 지나온 것이 많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청춘도 지나갔다.
칠판 앞에 서 있던 시간도 지나갔다.
나를 바라보던 아이들의 얼굴도 대부분 희미해졌다.
사라진 것이 많아질수록 사람은 묻게 된다.
나는 무엇을 남겼을까.
이제는 꼭 거창한 대답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건넨 말 한마디.
힘든 사람 옆에 잠시 앉아 있었던 시간.
한 아이에게 가르쳐준 문장 하나.
내가 쓴 글을 읽고 이름 모를 누군가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던 순간.
삶이 남기는 것은 어쩌면 이런 작은 것들이다.
우리는 자신이 건넨 것이 어디까지 흘러갈지 알 수 없다.
한마디 말이 한 사람에게 남고,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비슷한 온기를 건넨다면 삶은 그렇게 우리가 모르는 곳까지 이어진다.
나는 그것을 인간의 또 다른 영속성이라고 믿고 싶다.
몸을 이어가는 것만이 생명의 연장은 아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건너가는 것도 삶이 자신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
가을 햇살이 창틀에서 조금씩 물러났다.
나는 다시 사마귀를 보았다.
조금 전까지 나는 그 작은 몸에서 죽음과 희생을 생각했다.
이제는 달랐다.
그것은 죽으러 가는 생명이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 있으려는 생명이었다.
사랑도 어쩌면 그런 것인지 모른다.
누군가를 위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살아 있게 하는 것.
자신을 없애 사랑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살아내면서 누군가에게 좋은 것을 남기는 것.
잠시 다른 곳을 바라보다 다시 창틀을 보았을 때 사마귀는 사라지고 없었다.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도 그렇게 내 삶에서 떠나갔을 것이다.
그들이 어디까지 갔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내가 건넨 무엇인가를 하나씩 가지고 갔기를 바란다.
나 역시 누군가가 내게 남긴 것들을 품고 여기까지 왔을 테니까.
사람은 그렇게 서로의 삶을 조금씩 가지고 살아간다.
사마귀가 떠난 빈 창틀 위로 가을 햇살이 오래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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