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박을 떠나야 집이 보일 때가 있다 | 부부가 함께 맞는 하룻밤

차박을 떠나야 집이 보일 때가 있다

 

집이라는 말은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무거워진다.

젊은 날의 집은 돌아가 잠들 곳이었다. 비바람을 막아주는 지붕과 벽이면 충분했다.

세월이 흐르자 집 안에는 물건만 쌓인 것이 아니었다. 살림이 쌓이고 책임이 쌓였다.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들도 늘어났다.

그 집에서 오랫동안 살림을 해온 아내가 언제부터인가 TV 속 차박 영상을 즐겨 보기 시작했다.

어느 저녁이었다.

연속극이 끝난 화면에는 이름 모를 바닷가가 펼쳐져 있었다. 자동차 한 대가 바다를 향해 서 있었다.

화면 속 사람은 뒷좌석을 접고 얇은 차박 매트를 깔았다. 작은 등을 켜고 빗소리를 들었다. 저녁은 편의점 도시락이었다.

아내가 찻잔을 들고 화면을 바라보다 말했다.

“저기선 저녁을 그냥 편의점 도시락 하나로 때우네. 설거지도 없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내는 한동안 화면을 바라보다 빈 찻잔을 들고 주방으로 갔다.

며칠 뒤부터 택배가 도착했다.

차박용 매트가 왔다. 자동차 창문을 가릴 암막 커튼도 왔다. 손바닥만 한 작은 등도 하나 생겼다.

아내는 택배 상자를 뜯을 때마다 물건을 거실 바닥에 펼쳐놓았다. 소풍을 앞둔 사람처럼 표정이 밝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 물었다.

“우리도 이번 주말에 딱 하룻밤만 차에서 자고 올까요?”

나는 허허 웃었다.

차에서 자는 일이 화면처럼 낭만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자동차에서 보낸 밤이 하나 있었다.

수년 전 겨울이었다.

그날 나는 집으로 곧장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무슨 대단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람에게는 가끔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고,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 있다.

나는 집으로 가는 길을 지나쳐 계속 운전했다.

도심의 불빛이 드문드문 끊어지고 한적한 주차장이 나타났을 때 차를 세웠다.

시동을 껐다.

히터가 멈추자 차 안의 온기가 빠르게 식었다.

운전석을 뒤로 젖히고 코트 깃을 세웠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등은 딱딱한 시트에 눌렸고 발끝부터 추위가 올라왔다. 자세를 바꾸어도 불편했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도 손가락이 시렸다.

밤이 깊어지자 차창이 흐려졌다.

숨을 내쉴 때마다 입김이 유리에 닿았다. 조금 뒤 차창 가장자리에 하얀 서리가 생겼다.

나는 그 서리를 오래 바라보았다.

차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깥에는 겨울이 있었고, 안에는 내가 있었다.

그날 밤 나는 거의 자지 못했다.

새벽 다섯 시가 가까워지자 검었던 차창이 조금씩 푸르게 변했다.

서리가 낀 유리 사이로 희미한 빛이 들어왔다.

나는 차 문을 열었다.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덮쳤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자 겨울 공기가 목을 지나 가슴 깊숙이 내려왔다.

멀리 호수가 보였다.

밤새 얼어 있던 세상이 이제 막 빛을 받아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 차 문을 열어둔 채 앉아 있었다.

그때 이상하게 집이 생각났다.

따뜻한 방과 이불, 뜨거운 물, 아무렇지 않게 켜던 보일러가 떠올랐다.

집에 있을 때는 생각해본 적 없는 것들이었다.

날이 밝자 집으로 돌아갔다.

그 뒤로 오랫동안 자동차에서 밤을 보낼 일은 없었다.

그런데 이제 아내가 차박을 가자고 한다.

아내는 집을 떠날 준비를 하면서 자꾸 집 안의 물건을 챙긴다.

매트와 담요, 베개를 가져가야 한다고 했다. 물을 끓일 작은 주전자도 필요하다고 했다.

“하룻밤 자는데 뭘 그렇게 많이 가져가.”

내가 말하자 아내는 대꾸도 하지 않고 담요를 하나 더 꺼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다가 웃었다.

집을 떠나겠다면서 우리는 집을 조금씩 자동차에 싣고 있었다.

며칠 전에는 거실에 차박 매트를 펴보았다.

아내가 먼저 누워보더니 내게도 옆에 누워보라고 했다.

두 사람이 눕자 생각보다 좁았다.

“이렇게 좁아서 잘 수 있겠어?”

내가 물었다.

아내는 천장을 바라본 채 말했다.

“하룻밤인데 뭐.”

그 말이 오래 남았다.

하룻밤인데 뭐.

집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필요로 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차박을 위해 펼쳐놓은 작은 매트 위에는 두 사람이 겨우 누울 자리만 있었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아내도 더 말하지 않았다.

조만간 우리는 차박을 떠날 것이다.

아내는 담요를 하나 더 가져가자고 할 테고, 나는 짐이 많다고 투덜거릴 것이다.

저녁에는 편의점 도시락을 먹을지도 모른다.

아내가 빈 용기를 접으며 정말 설거지가 없어서 좋다고 웃는다면, 나도 따라 웃을 것 같다.

밤이 깊으면 시동을 끌 것이다.

차창 밖에는 어둠이 있고 작은 차 안에는 아내와 내가 있을 것이다.

수년 전 겨울밤처럼 입김이 유리에 닿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차창에 내 숨만 맺혔다.

이번에는 두 사람의 숨이 천천히 유리를 흐릴 것이다.

아침이 오면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매트를 접고 담요를 털고 컵을 씻어 제자리에 놓을 것이다.

결국 다시 설거지를 할 것이다.

아마 아내도 아무 말 없이 고무장갑을 낄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 옆에 서서 물기 묻은 그릇 몇 개쯤 받아 닦아야겠다.

모레면 침낭이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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