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담도 휴게소

바다와 육지가 서로의 자리를 넘보는 경계에 섬 하나가 떠 있다.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려 서해대교에 들어서면 바다가 갑자기 가까워진다. 거대한 주탑과 케이블 사이로 서해가 펼쳐지고, 그 한가운데 물 위에 잠시 얹어놓은 듯한 땅이 나타난다.
행담도(行潭島)다.
‘행담’이라는 이름은 묘하다.
다닐 행(行)에 못 담(潭).
이름의 본래 유래와는 별개로, 나는 그 두 글자를 오래 바라보았다. 가야 한다는 글자와 고여 있는 물의 글자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그날 나는 행담도 휴게소에서 오랜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집을 나설 때 하늘은 흐렸다. 잿빛 구름 아래로 익숙한 빌딩과 아파트가 뒤로 밀려났다.
차들은 빨랐다.
앞차도 뒤차도 제 갈 길을 알고 있는 듯 달렸다. 나도 그 틈에 끼어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운전대를 쥔 손에 자꾸 힘이 들어갔다.
서해대교에 올라서자 바람이 차체를 옆으로 밀었다. 나는 두 손으로 핸들을 고쳐 잡고 속도를 조금 줄였다.
멀리 행담도가 보였다.
출발지도 아니고 목적지도 아닌 곳.
사람들이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떠나는 섬이었다.
행담도 휴게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문을 열자 바닷바람이 먼저 들어왔다. 짭조름한 냄새 사이로 호두과자와 알감자 익는 냄새가 섞여 있었다.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허리를 펴고 팔을 뒤로 젖혔다. 어떤 이는 종이컵을 들고 바다 쪽으로 걸었고, 아이 하나는 어묵을 들고 부모보다 먼저 뛰어갔다.
휴게소란 이상한 곳이다.
모두 떠나는 사람들인데, 잠시 머무는 동안만큼은 누구도 서두르지 않는다.
원두커피 두 잔과 어묵바를 샀다. 야외 테이블에 앉으니 서해대교가 한눈에 들어왔다.
굵은 케이블이 허공을 팽팽하게 당기고 있었다.
바다 때문에 끊어진 땅과 땅을 이어주는 다리였다.
그때 사람들 사이로 낯익은 걸음 하나가 보였다.
“야, 철호야!”
고개를 돌렸다.
빛바랜 청재킷을 입은 친구가 걸어오고 있었다. 머리는 많이 희어졌고 눈가에는 잔주름이 깊었다.
그런데 걷는 모양은 그대로였다.
한쪽 어깨를 조금 내리고 성큼성큼 걷는 버릇.
고등학교 때도 저랬다. 학교 앞 분식집에 들어가면 늘 나보다 두어 걸음 먼저 들어가 떡볶이부터 집어 먹었다. 뜨거운 줄도 모르고 덥석 입에 넣었다가 입을 벌리고 허허거리던 녀석이었다.
“오느라 고생했다. 차 안 막혔냐?”
“말도 마라. 서해대교 들어오는데 바람이 얼마나 부는지 차가 휘청거리더라.”
친구는 자리에 앉자마자 어묵바를 집었다.
기다리지도 않고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아, 뜨거워.”
나는 웃었다.
“넌 예순 넘어서도 그걸 못 기다리냐?”
친구가 입을 벌린 채 나를 흘겨봤다.
“사람이 한결같아야지.”
나는 결국 소리 내 웃었다.
세월은 머리를 희게 만들고 무릎을 쑤시게 했지만, 뜨거운 어묵 앞에서 기다리지 못하는 버릇 하나는 건드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친구가 이번에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너도 많이 늙었다.”
“거울부터 보고 말해.”
“나는 원래 이랬어.”
“네가 언제부터 백발이었냐?”
우리는 또 웃었다.
수십 년을 건너온 사람들이 만나 하는 말이 고작 늙었다는 타박이고, 뜨거운 어묵을 왜 그렇게 빨리 먹느냐는 잔소리였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
“글 좀 쓰고, 산에도 가고.”
“아직도 쓰냐?”
“쓰니까 사는 거지.”
친구는 더 묻지 않았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바다를 바라봤다.
나도 바다를 봤다.
말이 끊겼다.
젊었을 때는 침묵이 불편했다. 친구를 만나면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직장 이야기, 돈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꺼내놓아야 만난 것 같았다.
이제는 침묵도 대화가 되었다.
바닷물이 천천히 움직였다.
밀려왔다가 물러가고, 물러갔다가 다시 밀려왔다. 서해대교 위로 자동차들이 쉬지 않고 지나갔다.
친구가 잔을 내려놓았다.
“여기서 만나니까 좀 이상하다.”
“뭐가?”
“우리도 어디 가다가 중간에서 만난 것 같잖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친구도 더 말하지 않았다.
대신 남은 어묵을 마저 먹었다.
나는 서해대교를 바라봤다.
끊어진 두 땅 사이에 다리가 놓여 있었다.
같은 교실에 앉아 있던 두 아이도 어느 날 서로 다른 길로 갔다. 직장을 얻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고, 부모를 보내며 각자의 시간을 건넜다.
그 긴 세월 동안 우리는 서로의 하루를 거의 몰랐다.
그래도 만나면 어제 헤어진 사람처럼 웃었다.
그것이면 되었다.
커피가 식었다.
바람이 조금 세졌다.
친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가야겠다.”
“그래.”
우리는 주차장까지 함께 걸었다.
두 사람의 차는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다.
친구가 차 문을 열다가 말했다.
“다음에는 네가 서산까지 와.”
“생각해 보고.”
“그 말은 안 온다는 소리잖아.”
“그러니까 살아 있을 때 자주 불러.”
친구가 피식 웃었다.
“너부터 살아 있어.”
차 문이 닫혔다.
친구의 차가 먼저 움직였다. 방향지시등이 몇 번 깜빡이더니 서산 쪽 도로로 들어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차에 올랐다.
시동을 걸었다.
올 때와 같은 핸들이었다.
두 손을 올려놓았다.
이상하게 힘이 덜 들어갔다.
주차장을 빠져나와 다시 서해대교에 올랐다.
바람은 여전히 불었다.
차들도 여전히 빨랐다.
백미러 속 행담도 휴게소가 조금씩 작아졌다.
조금 전까지 친구와 마주 앉았던 섬도, 식은 커피도, 뜨거운 어묵도 모두 뒤로 밀려났다.
길은 다시 앞으로 뻗어 있었다.
한참을 달리다 문득 백미러를 보았다.
행담도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운전대를 조금 느슨하게 잡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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