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창문이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다.
움직이지 않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바라본다.
바깥을, 그리고 안쪽을.
사람들은 내게 기대어 멀리를 본다.
그들의 눈빛이 유리에 닿을 때마다, 나는 조용히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찾고 있나요?
바깥의 풍경인가요, 아니면 마음속의 어떤 기억인가요?”
그들은 대답하지 않는다.
그저 손끝으로 나를 만지작거리며
깊은 생각 속으로 스며든다.
어떤 날은 누군가 김이 서린 내 표면에
조심스럽게 글씨를 남긴다.
이름, 날짜, 혹은 아주 짧은 문장.
곧 사라지지만, 나는 기억한다.
그가 그 순간 무엇을 그리워하고 있었는지.
나는 수많은 시선을 품었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던 사람은
거리 끝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기다림은 유리처럼 투명했고,
그래서 더 쉽게 금이 갔다.
떠나는 차를 바라보며
몇 번이고 손을 들었다 내리던 사람.
그의 손바닥 자국은 며칠이 지나도 남아 있었다.
그건 이별의 흔적이었다.
한 남자는 오래전 누군가와 함께 보았던 풍경을 떠올리며
내게 이마를 기댔다.
움직이지 않고, 그저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체온을 느꼈고,
그리움이란 감정을 조용히 이해했다.
시간이 흐르면
나는 변한다.
비가 오는 날, 나는 흐려진다.
빗물은 내 몸을 타고 흐르며 세상을 일그러뜨린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왜곡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햇살이 강한 날엔 나는 완전히 투명해진다.
경계가 사라지고, 존재조차 잊혀진다.
사람들은 내가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바깥만 바라본다.
그러다 밤이 오면, 나는 거울이 된다.
어두운 바깥과 밝은 실내가 뒤바뀌면
그들은 나를 통해 자신을 마주한다.
지친 표정, 텅 빈 눈빛,
그리고 어쩔 수 없는 미소까지.
누군가는 답답함에 나를 두드린다.
손가락으로, 손바닥으로, 때론 주먹으로.
나는 그 울림을 조용히 받아들인다.
분노, 슬픔, 절망—나는 흔들리지만 깨지지 않는다.
어떤 이는 나를 닦는다.
부드러운 천으로 정성스럽게 먼지를 지운다.
나는 그 손길에서 위로를 느낀다.
세상을 더 맑게 보고 싶은,
그 소중한 마음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나를 통해
단지 바깥을 보는 것이 아니다.
사실은 자신의 마음을 비추는 것이다.
벚꽃이 흩날리는 봄날,
그들은 잊고 있던 설렘을 떠올리고
비 내리는 여름밤엔,
문득 그리움에 젖는다.
낙엽이 쌓이는 가을 오후에는
어느 순간의 상실을 곱씹고
눈이 내리는 겨울 아침엔
고요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마주한다.
나는 그 감정들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투명한 유리 한 장에, 그 모든 것을 품는다.
어제는 한 아이가 나에게 그림을 그렸다.
해와 집, 그리고 세 개의 동그라미.
그건 분명 가족이었다.
아이의 웃음 속엔
세상 모든 것이 단순하고 아름다웠다.
오늘은 한 노인이 나를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의 눈엔 오랜 세월이 담겨 있었다.
만났던 사람들, 지나간 순간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
나는 그 무게를 고요히 받아냈다.
그리고 내일은 또 누군가 올 것이다.
어떤 시선이 나를 스치고,
어떤 손길이 나를 어루만질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기다린다.
왜냐하면 나는 창문이니까.
안과 밖을 잇는 투명한 면.
풍경을 담는 틀.
감정을 비추는 거울.
나는 움직이지 않지만,
그들과 함께 흐르고,
변하지 않지만,
매 순간 새로운 이야기를 담는다.
오늘도 누군가 내게 기대어 앉는다.
손끝으로 나를 어루만지며 먼 곳을 바라본다.
나는 조용히 그를 담는다.
그의 숨결, 체온,
그리고 말하지 못한 감정까지.
그가 바라보는 것은
바깥의 세상이 아니다.
자신의 마음이다.
그리고 나는,
그 마음을 비춰줄 것이다.
투명하게,
정직하게,
따뜻하게.
왜냐하면 나는 언제나 여기 있으니까.
당신의 감정을 기억하는,
투명한 기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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