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줍는 노인과 3,800원의 우주 – 도시에서 발견한 작은 선의의 이야기

내 등허리에는 숫자가 찍혀 있었다.

유통기한.

2028년 어느 날까지 나는 이 세상에서 유효한 물건이었다. 누군가의 건강을 위해 만들어진 영양제 박스. 약국 진열대 위에서 반듯하게 서 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약국 뒷문에서 커터칼이 내 몸을 가른 순간, 그 숫자는 아무 의미도 없게 되었다.

비타민 병들이 쏟아졌다.

나는 납작하게 접힌 골판지가 되었다.

조금 전까지 무언가를 담고 있던 몸이었지만 이제는 그저 버려진 종이였다.

약국 앞 전봇대 옆에 놓였다.

그곳은 도시에서 버려진 것들이 잠시 머무는 자리였다. 담배꽁초, 젖은 전단지, 찢어진 쇼핑백. 밤이 되면 바람이 그 위를 훑고 지나갔다.

나는 바스락거렸다.

잠시 뒤 발소리가 멈췄다.

한 노파였다.

허리는 깊게 꺾여 있었다. 몸이 아니라 그림자가 먼저 땅에 닿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녀의 시선은 늘 아래를 향해 있었다. 바닥을 살피며 천천히 걸었다.

폐지 줍는 노인이었다.

그녀의 손이 내려왔다.

손등에는 오래된 상처 자국들이 있었다. 종이 모서리에 베인 흔적들이 굳은살처럼 굳어 있었다.

“이건 괜찮겠네.”

나는 손수레 위로 던져졌다.

이미 여러 종이들이 쌓여 있었다. 택배 상자, 쇼핑백, 광고 전단지. 구겨진 종이들이 서로 밀리며 수레가 덜컹거렸다.

노파는 수레를 끌고 길을 나섰다.

허리가 굽어 있는 사람에게 세상은 조금 낮은 곳에 있다. 그녀의 눈에는 보도블록의 틈, 작은 돌멩이, 버려진 껌딱지 같은 것들이 먼저 들어왔다.

잠시 뒤 우리는 넓은 도로 앞에 섰다.

차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노파는 수레를 밀고 도로로 들어갔다.

몇 걸음 가지 않아 수레가 멈췄다.

왼쪽 바퀴가 움푹 팬 아스팔트에 걸려 있었다.

노파는 손잡이를 잡고 힘을 줬다.

“낑…”

수레는 움직이지 않았다.

뒤에서 경적 소리가 울렸다.

빵.

빵빵.

노파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녀는 잠시 서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그때 누군가 수레 옆에 섰다.

검은 구두 한 켤레였다.

젊은 남자였다.

그는 잠깐 시계를 봤다. 그리고 수레 바퀴를 내려다봤다.

잠시 망설였다.

그 뒤 코트 단추를 하나 풀고 수레 뒤로 섰다.

“밀어볼까요?”

노파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말했다.

“아이고, 괜찮아요…”

남자는 이미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하나, 둘.”

둘이 동시에 힘을 줬다.

바퀴가 턱을 넘어왔다.

수레가 앞으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남자는 그대로 뒤에 서서 수레를 밀었다. 다른 손으로는 뒤에서 오는 차들을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차들이 속도를 늦췄다.

노파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걸었다.

두 사람의 등이 비슷하게 굽어 있었다. 앞에서는 노파가 수레를 끌고, 뒤에서는 청년이 몸을 낮춘 채 밀었다.

그들은 그렇게 도로를 건넜다.

골목 입구에 들어서자 남자는 손을 놓았다.

“여기까지면 되겠죠.”

노파는 그제야 잠깐 멈췄다.

뒤를 돌아보려다 말았다.

“고맙습니다.”

남자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에요.”

그리고 골목 반대쪽으로 걸어갔다.

잠시 뒤 우리는 고물상에 도착했다.

종이 더미 위에 내려졌다.

저울 위에 올라가자 바늘이 천천히 움직였다.

주인이 계산기를 두드렸다.

“3,800원이네요.”

천 원짜리 세 장과 동전 몇 개가 노파의 손에 쥐어졌다.

노파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녀는 돈을 쥔 채 근처 편의점으로 갔다.

“사발면 하나랑 삼각김밥 하나 주세요.”

잠시 생각하더니 덧붙였다.

“소시지도 하나.”

계산대 위에 동전이 굴러갔다.

또르르.

나는 다시 고물상 더미 위에 남았다.

잠시 뒤 압착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밖에서 수레 바퀴 소리가 들렸다.

노파가 골목을 지나가고 있었다. 빈 수레가 가볍게 흔들렸다.

그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주머니 속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짤랑.

동전들이 서로 부딪혔다.

3,800원.

어떤 날에는 그것이 한 끼 저녁이 되고,
어떤 날에는 누군가의 작은 선의가 된다.

짤랑.

도시는 그런 소리들로 밤을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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