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대 정화수와 역고드름: 어머니의 기도에서 배우는 한국 전통 신앙 이야기

겨울 새벽이면 어머니는 늘 가장 먼저 일어나셨다.
아직 해가 뜨기 전, 마당에는 밤의 냉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시간에 어머니는 조용히 우물가로 가서 물을 길어 올렸다. 그리고 그 물을 작은 놋그릇에 담아 장독대 위에 올려두었다.

그 물은 집안에서 정화수라고 불렸다. 한국의 전통 문화에서 정화수는 마음을 맑게 하고 하늘에 기도를 올리는 상징적인 물이다. 어머니에게 정화수는 종교 의식이라기보다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의 준비였다. 가족이 무사하기를 바라고, 하루가 평온하게 지나가기를 바라는 조용한 인사 같은 것이었다.

어머니는 놋그릇 앞에 잠시 서 있었다.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특별한 주문이나 경전은 없었다. 다만 잠깐 동안 마음을 모으는 시간만 있었다.

겨울 공기는 고요했고, 장독대 위의 놋그릇은 그 차가운 새벽 속에서 작고 단단한 존재처럼 보였다.

어린 나는 그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 그때는 왜 그런 일을 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어머니에게 그 시간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만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하루를 살아가기 전에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어느 해 정월 아침이었다. 밤새 기온이 크게 떨어진 날이었다. 어머니는 평소보다 조금 들뜬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와서 이것 좀 보아라.”

장독대 위의 놋그릇 속 물은 밤사이 완전히 얼어 있었다. 그런데 얼음의 가운데에서 가느다란 얼음 기둥 하나가 위로 솟아 있었다. 보통 고드름은 아래로 자라지만, 그 얼음은 마치 하늘을 향해 자란 것처럼 보였다.

작고 투명한 얼음 기둥은 겨울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어머니는 한동안 그 얼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마음이 닿았나 보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자연 현상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온도 변화와 물의 성질이 만들어 낸 우연한 결과일 것이다. 실제로 이런 현상은 물이 얼어가는 과정에서 내부 압력이 작용하면서 생길 수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역고드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날 아침 어머니에게 그 얼음은 단순한 물리 현상이 아니었다. 매일 정화수를 떠 놓고 마음을 모아 온 시간에 대한 작은 응답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어머니는 그 얼음을 한참 바라보다가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는 놀라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기쁨이 있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어머니의 기도를 조금 이해한 것 같았다. 어머니에게 중요한 것은 기적 그 자체가 아니라, 마음을 모아 기다리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종교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가 존재하고, 또 그 안에는 다양한 교파와 신앙 방식이 있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이름으로 신을 부르지만, 결국 같은 질문을 품고 살아간다.

우리는 왜 신을 찾는가.
그리고 사람은 무엇을 믿으며 살아가는가.

어릴 때 보았던 장독대 위의 놋그릇을 떠올리면 그 질문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어머니의 신앙은 거창한 교리나 복잡한 철학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주 작은 행동 속에서 드러났다.

물을 길어 올리는 일,
그 물을 조심스럽게 놓는 일,
그리고 잠시 마음을 모으는 일.

이 단순한 반복 속에서 어머니는 자신의 하루를 시작했다.

어쩌면 신앙이란 거대한 사상이나 교리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작은 행동에서 자라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음을 담아 무언가를 기다리는 시간은 사람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든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우리 집 장독대에는 더 이상 정화수가 놓이지 않는다. 장독대도 오래전에 사라졌다. 그러나 겨울이 깊어질 때면 나는 문득 그 장면을 떠올린다.

차가운 새벽 공기,
장독대 위의 놋그릇,
그리고 얼어붙은 물 속에서 하늘을 향해 서 있던 작은 얼음 기둥.

그 앞에 서 있던 어머니의 모습도 함께 떠오른다.

나는 지금도 신이 존재하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사람이 마음을 모아 무언가를 기다릴 때, 그 기다림은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어머니가 매일 떠 놓던 정화수도 그런 기다림의 한 형태였을 것이다.

어쩌면 신앙이란 특별한 기적을 발견하는 일이 아니라, 평범한 하루 속에서 마음을 정성스럽게 담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마음이 모일 때, 어떤 날에는 장독대 위의 놋그릇처럼 작은 기적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겨울 아침의 역고드름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서 투명하게 빛난다. 그것은 신의 증거라기보다, 한 사람이 평생 동안 지켜 온 정성의 모양에 더 가깝다.

그래서 나는 가끔 마음속에 작은 그릇 하나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 그릇이 완전히 비어 있지 않도록 조용히 하루를 채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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