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몇 권 냈고, 글을 쓴 세월도 짧지 않다.
젊은 날엔 펜을 칼처럼 쥐고 날마다 문장을 베듯이 써 내려갔고,
그 끝에 겨우 몇 권의 책이 남았다.
어쩌면 그 과정이 나를 단련시켰고,
그래서 스스로를 이제는 어느 정도 이 길에 익숙한 사람,
작가라는 이름으로 불러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이
한 통의 신춘문예 탈락 통지 앞에서 조용히 무너졌다.
어쩐지 그 글이 그 글 같고,
이전에 썼던 표현을 또 반복하게 되는 나를 마주한 어느 날,
우연히 젊은 작가의 수상작을 읽게 되었다.
글에는 요란한 기교도, 화려한 수사도 없었다.
오히려 소박하고 맨 얼굴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흔들렸다.
그 문장은 조용히 다가와서
마음 한가운데를 툭 건드렸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너무 오랫동안 나만의 글방 안에서,
한결같은 습관으로 글을 써왔다는 것을.
익숙함은 내공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틀일 수 있다는 사실도.
문학의 강호에는 실로 고수가 많다.
책을 낸 사람보다,
오히려 삶을 견뎌낸 사람이
더 깊은 문장을 쓸 수도 있다는 것.
내 나이 예순을 넘기고 나서야
부끄럽게도 다시 배운다.
글이란 잘 쓰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써야 한다는 것을.
문장은 다듬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책상 앞에 앉는다.
화려한 수사보다는
하나의 단어를 오래 붙잡고,
감정을 과장하기보단
절제하는 문장을 택하려 한다.
누군가를 감동시키려는 욕심보다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고요한 의지가
더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강호엔 여전히 고수가 많다.
그렇기에 내가 설 자리는
더 좁아졌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받아들인다.
그들이 있어
내가 자만하지 않게 되었고,
다시 배우게 되었으며,
여전히 펜을 들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예전처럼 글로 싸우듯이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
이제는 그저
한 줄의 문장을 정직하게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에게 깊이 닿지 않아도 좋다.
내가 살아온 시간만큼,
내가 감당해온 마음만큼,
그만큼의 깊이로만 써보고 싶다.
강호엔 고수가 많지만,
그래서 나는 더 겸손히,
더 느리게,
그러나 반드시 끝까지 이 길을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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