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얼굴에 로션을 바르듯
묻어 있던 도시의 시간을 닦아내고
나는 고향으로 내려갔다.
고향은
떠난 적이 없다는 듯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사람보다 오래 사는 것들,
흙과 바람과 풀들이
내 이름을 먼저 기억하고 있었다.
뜰 밖 덤불을 지나자
때찔레 꽃이
예전의 흰빛으로 피어 있었다.
한 송이를 꺾었다.
가시는 여전히 서늘했지만
이번에는
내 손등을 찌르지 않았다.
아마도
변한 쪽은
꽃이 아니라 나였기 때문이다.
뒷산의 봉긋한 무덤 위에는
할미꽃 두어 송이.
세월처럼 고개 숙이고
무덤 곁에 앉아
조용히 봄을 짓고 있었다.
참나무 가지 위 참새는
내가 고무총 쏘는 흉내를 내도
날아가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놀람조차
천천히 늙어가는 모양이었다.
먼지를 일으키며
낯선 승용차 한 대가 지나가고
잠시 후
다시 고요.
슬레이트 지붕 아래
두 마리 굼벵이가
땅속의 시간처럼
느리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떠난 것은
고향이 아니라
내가 놓고 간 시간이었다는 것을.
고향은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흙과 풀과 꽃의 모습으로
지금도 천천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은
결국 한 번쯤
자신의 시간으로 돌아온다.
그곳의 이름을
우리는
고향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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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것은
고향이 아니라
내가 놓고 간 시간이었다는 것을
그렇군요. 선생님이나 나나 모두 고향을 떠나 살았군요. 시의 표현대로 하면, 20대 후반 그 젊은 나이에 고향을 떠나 지금 초로의 60대 중반이 되었으니 거의 40여 년 시간을 그곳에 놓았던 거군요. 40여 년만에 첫 고향 방문은 아니겠지만 고향을 대하는 선생님의 마음이나 태도가 따뜻하듯이 젊어서 고향을 떠나 많이 변한 채로 돌아왔을 선생님을 고향도 따뜻하게 반기는 듯하여 참 좋습니다. 사실 나에게 그곳은 앞 산 뒷 산 그대로 있고, 앞 내울 뒷 내울 여전히 흐르며 철마다 잊지 않고 꽃 피어 벌, 나비 여전히 날고 철따라 변함없이 철새 찾아 와 지저기지만, 나를 낳고 키워준 부모님 이미 그곳에 계시지 않고 내 나고 뒹굴던 집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함께 자란 형제들, 친구들 모두 없는 곳이 되어 고향에 고향에 돌아가도 내 그리던 고향은 아니지만 늘 잊지 못하는 곳이 고향이니, 우린 왜 차마 그곳을 꿈에도 잊지 못하고 언젠가는 돌아가야할 곳으로 생각하는지 모르겠군요. 우리 말에 금의환향이 있는 것을 보면 출향하여 출세한 후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이미 너나없이 고향은 마땅히 돌아가야할 정처였던 듯하군요? 연어도 난 곳 잊지 않고 수만 킬로 밖을 유영하다가 기어이 돌아와 자신이 그 곳에서 났듯 자신의 후예도 그곳에 낳고서야 생을 마감한다 하고, 여우도 생의 종언을 느끼면 자신이 태어난 그 언덕을 향하여 걷고 걸어 돌아 가거나 그도 허락하지 않을 상황이면 머리를 고향 쪽을 향하고 생을 마감한다는데(수구초심) 내 비록 고향에 돌아가도 반겨 줄 이 없어도 내 뿌리는 그 곳이고 내 영면의 자리도 부모님 계신 곳이어서 고향을 잊지 않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
울림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 따뜻한 글 남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떠난 것은 고향이 아니라 내가 놓고 간 시간이었다”는 구절을 자신의 삶과 이어 읽어주신 마음이 오래 남았습니다. 부모님도, 옛집도, 함께 뛰놀던 사람들도 많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끝내 고향을 잊지 못하는 이유는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의 뿌리가 그곳에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금의환향, 연어의 회귀, 수구초심까지 이어지는 울림님의 생각을 읽으며 저 또한 많은 공감을 했습니다. 결국 고향은 사람과 풍경을 넘어, 한 사람이 살아온 시간과 삶의 시작을 품고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귀한 마음 나눠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무더위가 이어지는 날씨입니다. 늘 건강 잘 챙기시고, 시원하고 평안한 여름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