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얼굴에 로션을 바르듯
묻어 있던 도시의 시간을 닦아내고
나는 고향으로 내려갔다.
고향은
떠난 적이 없다는 듯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사람보다 오래 사는 것들,
흙과 바람과 풀들이
내 이름을 먼저 기억하고 있었다.
뜰 밖 덤불을 지나자
때찔레 꽃이
예전의 흰빛으로 피어 있었다.
한 송이를 꺾었다.
가시는 여전히 서늘했지만
이번에는
내 손등을 찌르지 않았다.
아마도
변한 쪽은
꽃이 아니라 나였기 때문이다.
뒷산의 봉긋한 무덤 위에는
할미꽃 두어 송이.
세월처럼 고개 숙이고
무덤 곁에 앉아
조용히 봄을 짓고 있었다.
참나무 가지 위 참새는
내가 고무총 쏘는 흉내를 내도
날아가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놀람조차
천천히 늙어가는 모양이었다.
먼지를 일으키며
낯선 승용차 한 대가 지나가고
잠시 후
다시 고요.
슬레이트 지붕 아래
두 마리 굼벵이가
땅속의 시간처럼
느리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떠난 것은
고향이 아니라
내가 놓고 간 시간이었다는 것을.
고향은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흙과 풀과 꽃의 모습으로
지금도 천천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은
결국 한 번쯤
자신의 시간으로 돌아온다.
그곳의 이름을
우리는
고향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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