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 끝자락에서 아이들의 웃음이 봄바람을 타고 출렁인다.
공이 튀는 소리, 발끝을 타고 흐르는 경쾌한 외침들.
“막아!” “간다!”
아이들은 삶의 속도를 잴 줄 모르는 시간 속에서
그저 지금 여기를 힘껏 살아내고 있었다.
나는 그 소란스러운 생명들 사이로
조용히 산책길을 어슬렁거린다.
목적 없는 발걸음은 오히려 충만하고,
속도 없는 시간은 뜻밖에 귀하다.
운동장을 에워싼 나무에는 초록잎이 무성하고,
그 아래엔 진분홍 철쭉이 무심히 피어 있다.
아이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그 그늘 속에서
철쭉은 아무도 보지 않아도 꿋꿋이 봄을 지킨다.
마치 오래전 누군가의 청춘이 그랬던 것처럼.
고개를 들면, 하늘 위로 아지랑이가 흐르고
눈에 보이지 않는 꽃내음이 코끝을 어지럽힌다.
이 계절은 냄새로, 색으로, 소리로
우리 마음 어딘가를 비집고 들어온다.
봄은 그렇게 기억이 되고, 추억이 된다.
운동장 너머 교실에선
고3 아이들이 고개를 숙이고 문제를 풀고 있다.
창 너머 봄은 그렇게 환하고 연한데,
그들은 미래를 향해 또 다른 봄을 견디는 중이다.
그 봄 또한, 언젠가는 눈물겹도록 그리워질 것이다.
나는 다시 천천히 걷는다.
철쭉 그늘을 지나며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아이들의 웃음을 지나며,
한때 이 운동장을 뛰놀던 내 어린 시간을 떠올린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한 조각의 학창시절은 마음 깊은 어딘가에 품어져 있다.
그 조각은 문득 이런 봄날에
바람처럼, 꽃향기처럼 되살아난다.
그리고,
이 고요한 풍경과 아이들의 웃음,
바람에 날리는 꽃잎 하나까지도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이라 여기며
가만히 마음속 깊은 곳에 눌러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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