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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수필

철쭉 그늘 아래,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

by 선비천사 2025. 4. 24.

 

 

운동장 끝자락에서 아이들의 웃음이 봄바람을 타고 출렁인다.
공이 튀는 소리, 발끝을 타고 흐르는 경쾌한 외침들.
“막아!” “간다!”
아이들은 삶의 속도를 잴 줄 모르는 시간 속에서
그저 지금 여기를 힘껏 살아내고 있었다.

 

나는 그 소란스러운 생명들 사이로
조용히 산책길을 어슬렁거린다.
목적 없는 발걸음은 오히려 충만하고,
속도 없는 시간은 뜻밖에 귀하다.

 

운동장을 에워싼 나무에는 초록잎이 무성하고,
그 아래엔 진분홍 철쭉이 무심히 피어 있다.
아이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그 그늘 속에서
철쭉은 아무도 보지 않아도 꿋꿋이 봄을 지킨다.

마치 오래전 누군가의 청춘이 그랬던 것처럼.

 

고개를 들면, 하늘 위로 아지랑이가 흐르고
눈에 보이지 않는 꽃내음이 코끝을 어지럽힌다.
이 계절은 냄새로, 색으로, 소리로
우리 마음 어딘가를 비집고 들어온다.
봄은 그렇게 기억이 되고, 추억이 된다.

 

운동장 너머 교실에선
고3 아이들이 고개를 숙이고 문제를 풀고 있다.
창 너머 봄은 그렇게 환하고 연한데,
그들은 미래를 향해 또 다른 봄을 견디는 중이다.
그 봄 또한, 언젠가는 눈물겹도록 그리워질 것이다.

 

나는 다시 천천히 걷는다.
철쭉 그늘을 지나며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아이들의 웃음을 지나며,
한때 이 운동장을 뛰놀던 내 어린 시간을 떠올린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한 조각의 학창시절은 마음 깊은 어딘가에 품어져 있다.

그 조각은 문득 이런 봄날에
바람처럼, 꽃향기처럼 되살아난다.

 

그리고,
이 고요한 풍경과 아이들의 웃음,
바람에 날리는 꽃잎 하나까지도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이라 여기며
가만히 마음속 깊은 곳에 눌러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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