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발을 버리지 못하는 버릇이 있다.
끈이 해지고 밑창이 얇아져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이상하게도 마지막까지 눈에 남는 곳은 발끝이 아니라 뒤축이다.
둥글게 닳은 뒤축을 보면, 그 신발이 얼마나 오래 걸었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
어릴 적 우리 집 현관에는 아버지의 검은 구두가 늘 같은 자리에 놓여 있었다.
광은 잃지 않았지만 뒤축만큼은 유난히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나는 그게 신기했다.
“아버지, 구두 새로 사세요.”
그러면 아버지는 구두를 한 번 뒤집어 보더니 늘 같은 말을 했다.
“아직 걸을 만하다.”
그 말은 오래도록 절약에 관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
시간이 지나 내 신발에도 같은 흔적이 생겼다.
퇴근하고 현관에 들어서 신발을 벗는 순간이었다.
문득 뒤축이 눈에 들어왔다.
한쪽이 둥글게 닳아 있었다.
그 모양이 낯설지 않았다.
아버지의 구두와 꼭 닮아 있었다.
그제야 오래전 현관 풍경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
사람은 앞으로 걸어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걸음은 뒤축에서 시작된다.
온몸의 무게를 가장 먼저 받아내는 곳.
다음 한 걸음을 위해 가장 먼저 땅을 딛는 곳.
그래서 뒤축은 말없이 먼저 닳는다.
비 오는 날도,
눈 쌓인 골목도,
급하게 뛰던 횡단보도도,
뒤축은 묵묵히 지나왔다.
길은 기억하지 못해도 신발은 기억한다.
∞
얼마 전 신발장을 정리하다가 오래 신은 운동화를 손에 들었다.
버리려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그 신발을 신고 첫 출근을 했고,
병원으로 뛰어가던 날도 있었고,
아무 이유 없이 한강을 오래 걷던 저녁도 있었다.
사진은 그날의 얼굴을 남겼지만,
신발은 그날의 무게를 남기고 있었다.
∞
구둣방 앞을 지나면 가끔 걸음을 늦춘다.
닳은 뒤축을 갈아 새 고무를 붙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상한 생각이 든다.
사람도 저렇게 닳은 마음을 조용히 덧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신발도 결국 같은 자리부터 다시 닳는다.
걸음의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삶도 그렇다.
∞
현관은 하루가 끝나는 곳이다.
신발은 그곳에서 하루의 무게를 내려놓는다.
말없이 벗겨진 신발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둥글어진 뒤축 하나가 지나온 시간을 대신 말해 준다.
누구를 만나러 갔는지,
얼마나 서둘렀는지,
몇 번이나 돌아섰는지는 알 수 없어도,
성실하게 땅을 디뎌 온 시간만큼은 감출 수 없다.
∞
오늘도 신발을 벗어 현관에 나란히 놓는다.
저녁 햇살이 창문을 돌아와 닳은 뒤축 위에 가만히 머문다.
문득 아버지의 구두가 떠오른다.
“아직 걸을 만하다.”
그 한마디는 구두를 두고 한 말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노을은 오래된 신발에도 새 신발과 같은 빛으로 내려앉는다.
그리고 뒤축은 아무 말 없이,
오늘도 하루를 견딘 사람의 시간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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