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숭아 꽃잎, 그리고 상처 대신 남긴 색깔”
며칠째 바람이 불었다. 비도 그치지 않았다.마당의 나무가 잎을 떨구며 흔들렸다.잎들은 아직 푸르렀다.떨어지기엔, 마음이 먼저 늙어야 한다는 듯. 그 아래에서 나는 낡은 연장을 정리하고 있었다.날이 무뎌진 전지가위, 덜그럭대는 드라이버,손잡이가 갈라진 톱.젊은 날엔 저것들로 뭐든 만들었다.고장 난 문, 삐걱이는 의자,때론 뒤틀린 관계까지도. 그때의 나는 베는 사람이었다.일을, 말끝을, 감정을.먼저 휘둘러야 살아 있는 것 같았다.그리고 남은 건, 자른 것보다도잘린 내 쪽 마음이었다. “아빠!”딸아이가 봉숭아꽃을 양손에 가득 안고 달려왔다.“이거 찧어줘! 우리 손톱에 물들일 거야!” 나는 칼 대신 절구를 꺼냈다.봉숭아꽃을 넣고 찧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툭, 씨가 튀어나왔다.아이들이 웃었다.그 웃음이, 나를 오..
2025. 6.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