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아래로만 흐르지 않는다”
나는 한참을 바라보았다.싱크대에서 한 방울씩 떨어지던 물방울이조금씩 스테인리스 표면을 두드리며 만든 둥근 울림을.물은, 그렇게 조용히 세상을 흔든다. 물은 아래로 흐른다고 배웠다.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나도 그렇게 살았다.몸을 낮추고, 말끝을 흐리고, 가능한 한 덜 튀는 방향으로. 물은 그게 옳다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풀뿌리를 적시고, 나무 뿌리에 스며들고, 자갈 틈을 지나다정한 기척으로만 존재하는 물.나는 그게 ‘지혜’라고 믿었다. 하지만, 어느 여름,아스팔트 위에 떨어진 빗방울이 증기로 솟구쳐햇살 속에서 반짝이던 순간,나는 알았다.물이 위로도 흐른다는 걸. 보이지 않는 물기둥,그것은 울컥, 치밀어 오르는 분노일 수도,숨죽였던 소망일 수도 있다.물은 솟는다.산꼭대기에서도, 벌어진 틈에서도,누구도..
2025. 6.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