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금파리를 읽는 시간|깨진 그릇 조각에 남은 한국 농촌의 기억과 삶

사금파리를 읽는 시간

마당에서 발견한 사금파리는 내게 오래된 그릇 조각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시간이었다. 흙속에 묻혀 있던 작은 파편 하나에는 이름 없이 견디며 살아간 삶과 가족의 역사, 그리고 말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사금파리를 그릇이 아니라 기억으로 읽게 되었다.

어린 시절 마당 구석, 잡풀이 우거진 시궁창 언저리나 뒤안의 쓰레기 더미를 뒤적이다 보면 어김없이 푸른빛을 띤 사기그릇 조각 하나가 얼굴을 내밀곤 했다. 흙을 두껍게 뒤집어쓴 채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지만, 깨진 단면만큼은 여전히 서늘한 빛을 품고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사금파리라 불렀다.

우리의 소꿉놀이는 늘 그 조각들을 흙속에서 찾아내는 일로 시작되었다. 가마솥에서 갓 퍼 올린 쌀밥 대신 모래를 담던 대접도, 들꽃과 이파리로 만든 음식을 담던 종지도 모두 사금파리였다.

조심한다고 손가락을 오므려도 날카로운 단면은 끝내 어린 살갗을 베어냈다. 손끝에 붉은 피가 맺히고 눈물이 핑 돌면서도 우리는 그 조각을 쉽게 내려놓지 못했다. 햇빛을 받은 깨진 단면이 유난히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때는 몰랐다. 그 빛이 누군가의 평범했던 하루가 깨져 남은 흔적이라는 것을.

철이 들고 나서야 궁금해졌다. 밭을 갈 때마다, 삽을 깊이 찔러 넣을 때마다 쇠날 끝에서 맑게 울리던 그 많은 사금파리는 어디에서 흘러나온 것일까.

답은 오래된 부엌에 있었다.

그 시절의 부엌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개숫물 흐르는 소리와 사기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졌다. 삼대가 둘러앉는 식탁을 지키기 위해 며느리들의 손은 쉬지 않았고, 흰 사기그릇은 그 손끝에서 닳아갔다.

그리고 가끔 그릇은 깨졌다.

상을 물리치며 가장이 던진 분노였을 수도 있다. 종일 밭일에 지친 새댁의 손에서 미끄러진 실수였을 수도 있다. 한평생 참고 살아온 시어머니가 더는 견디지 못해 내던진 체념이었을 수도 있다.

누가 깨뜨렸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부엌에서는 모두가 서로를 견디며 살아야 했고, 모두가 조금씩 닳아갔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선명하게 나눌 수 없는 시대였다.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상처를 받았고, 또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남겼다.

그릇은 깨어지는 순간에만 소리를 낸다. 그러나 사람은 평생 침묵한 채 금이 가기도 한다.

어릴 적 마을에는 시집살이를 견디지 못해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들이 드물지 않았다. 그 소문이 돌던 날에도 동네 부엌에서는 여전히 그릇들이 부딪히며 저녁상을 준비하고 있었다. 생활은 슬픔보다 먼저 다음 끼니를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저수지를 건너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채은댁 이야기를 들은 뒤, 나는 마당에서 유난히 붉은 흙이 묻은 사금파리 하나를 주웠다. 어린 마음에도 이상하게 그 조각은 단순한 그릇처럼 보이지 않았다. 끝내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 사람들의 시간이 흙속으로 스며들어 저 작은 파편이 된 것만 같았다.

흙은 오래도록 그 조각들을 품고 있었다.

날카로운 모서리는 흙먼지 속에서 조금씩 무뎌졌고, 봄이면 호미 끝에서, 가을이면 삽날 끝에서 다시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쨍’ 하고 울리는 그 건조한 소리는 오래전 사람들이 아직 이 땅을 떠나지 않았다는 신호처럼 들렸다.

세월은 많은 것을 바꾸었다.

대가족의 엄숙한 질서도, 시집살이라는 이름의 오랜 관습도 대부분 역사가 되었다. 희생과 인내를 미덕으로만 말하던 시대 역시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사금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도 시골길을 걷다 발끝에 작은 사기 조각 하나가 채이면 나는 걸음을 멈춘다.

허리를 굽혀 흙을 털어내고 손바닥 위에 올려놓는다.

차갑고 매끄러운 단면을 손끝으로 천천히 쓸어본다.

그 작은 조각 안에는 둥글고 완전했던 한 그릇의 생애가 남아 있다. 더 이상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는 없지만, 깨진 뒤에도 자신만의 각도를 잃지 않은 채 시간을 견뎌온 흔적이 남아 있다.

문득 사람도 그릇과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누구나 살아가며 한 번쯤은 깨진다.

어떤 이는 상처 때문에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고, 어떤 이는 금이 간 자리로 더 깊은 빛을 품는다.

중요한 것은 깨지지 않는 삶이 아니라, 깨진 뒤에도 자신을 잃지 않는 삶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금파리는 버려진 조각이 아니다.

한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기록이며, 말보다 오래 남는 기억이다.

나는 햇빛을 향해 사금파리를 들어 올린다.

흰 단면 위에서 빛이 조용히 부서진다.

그 빛은 과거만 비추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을 살아가는 나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떤 그릇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대답 대신 사금파리를 다시 흙 위에 내려놓는다.

언젠가 또 다른 누군가가 이 작은 조각을 발견해, 오래된 그릇이 아니라 오래된 사람의 시간을 읽어주기를 바라면서.

*관련글 보기

다시 걷는다|신발끈을 다시 묶는다는 것은 삶을 다시 시작하는 일

“가을, 깨진 마음 위에 피는 참회 – 중년의 사랑과 상처에 대한 성찰”

글을 쓴다는 건, 결국 나를 만나는 일

선비천사의 브런치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선비천사 브런치 바로가기

 

이 글이 마음에 남으셨다면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마음을 나눠주셔도 고맙겠습니다.
카카오뱅크: 3333-35-3671093 (방철호)


이 글들을 엮어
『바람이 지나간 자리엔 마음이 남았다』라는 전자책으로 만들었습니다.
👉 전자책 보러 가기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