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관 불이 꺼지기도 전에 구두 뒤축을 구겨 벗는다.
구두 안에는 하루가 들어 있다. 출근길의 조급함, 사람들의 눈빛, 웃고 싶지 않을 때 웃었던 얼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되삼킨 말.
문고리가 딸깍, 잠긴다.
그 작은 소리 하나로 세상과 나 사이에 문이 생긴다.
문밖은 아직 소란스럽다. 자동차가 지나가고, 누군가는 전화를 하고, 늦은 사람은 더 늦지 않으려고 뛰어간다.
나는 이제 뛰지 않는다.
세면대 앞에서 손을 씻는다. 비누 거품이 손금 사이를 지나간다. 손바닥에는 오래 쥐고 살아온 것들의 자국이 남아 있다.
놓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일도 그랬고, 체면도 그랬다. 내 몫이라고 생각한 것은 무거워도 끝까지 들고 가야 하는 줄 알았다.
사람은 무거운 것을 들어서만 지치는 게 아니다. 내려놓아도 되는 것을 놓지 못해서 더 지친다.
수도꼭지를 잠근다.
낮 동안 입안에 머물던 말들도 물과 함께 흘려보낸다. 따질 말, 변명할 말, 한마디 하면 속이 시원할 것 같았던 말.
배수구는 아무 대답 없이 그것들을 삼킨다.
지금 생각하면 하지 않기를 잘했다.
세상에는 오늘 꼭 해야 할 것 같은 말이 많지만, 내일까지 가져갈 필요 없는 말도 많다.
식탁에는 따뜻한 국이 놓여 있다.
김이 오른다.
숟가락으로 국을 한 번 젓는다. 하루 종일 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저녁에는 말 한마디 없는 국그릇 앞이 편하다.
벽시계가 째깍거린다.
시계추가 왼쪽으로 갔다가 오른쪽으로 돌아온다.
밖에서 시간은 늘 앞으로만 갔다.
늦으면 안 되고, 밀리면 안 되고, 뒤처지면 안 되었다. 잠깐 멈추기라도 하면 세상이 나를 두고 먼저 갈 것 같았다.
그런데 시계추는 서두르지 않는다.
앞으로 가지도 않는다.
갔다가 돌아온다.
다시 갔다가 돌아온다.
평생 앞으로 가는 것만 배운 내게 그것은 이상한 움직임이다.
돌아가는 것은 뒤처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멈추는 것은 게으른 일이고, 내려놓는 것은 지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많이 갔다.
가야 할 곳보다 더 멀리 갔고, 들어야 할 것보다 더 오래 들고 있었으며, 마음까지 집 밖에 세워둔 날이 많았다.
그제야 굳어 있던 어깨가 조금 내려간다.
하루를 잘 살았는지는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오늘도 돌아왔다.
구두를 벗었고, 손을 씻었고, 따뜻한 국 한 그릇을 먹었다.
어쩌면 무사하다는 것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뜻이 아닐 것이다.
많은 일을 겪고도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불을 끈다.
지붕 아래 무릎을 모으고 잠시 앉아 있는다.
문밖에 두고 온 줄 알았던 하루가 가슴 한구석에서 아직 웅성거린다.
문을 잠근다고 세상까지 잠기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 소리를 억지로 밀어내지 않는다.
잠시 그대로 둔다.
어둠 속에서 벽시계만 움직인다.
시계추가 왼쪽으로 간다.
한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 머물다가,
다시 돌아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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