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서 있던 자리

우리는 조금 늦게 만났습니다.
당신에게는 건너온 세월이 있었고
내게도 접지 못한
몇 장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한 지붕 아래 짐을 풀던 날,
나는 당신이
내 곁으로 온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같은 식탁에서
계절을 건너는 동안
나는 오래
내가 우리를 지키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늦은 밤이면
당신은 식어 가는 불빛 아래
말없이 하루를 접었습니다.
겨울이면 내 쪽 이불을 끌어올리고
외출할 때면
내 옷깃부터 바로잡던 손.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늘 곁에 있는 것은
원래 그 자리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나는 앞만 보며 걸었습니다.
돌아보지 않는 사람은
자기가 혼자 걷는 줄 압니다.
어느 날 돌아보니
당신은 늘 한 걸음 뒤에서
내게 오는 볕을 가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저녁이 깊어지자
당신의 그늘이
내 발끝까지 와 있었습니다.
평생 내가
당신의 기둥인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내가 기대어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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